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희랍어로 읽어주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한다. 물론 어린 톨스토이는 희랍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부가 읽어주는 서사시의 리듬을 통해 문학적 감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인생사 다 그렇지만 특히 교육에 왕도는 없다. 다만, 어떤 형태든 양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좋고, 그런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다.
교육부가 최근 ‘초등교과서 한자표기 기준’(2016.12.30)을 폐기했다고 한다. 2014년부터 2년간 정책 연구와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이 기준은,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에 300자 수준의 한자를 여백에 음과 뜻을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에도 사교육 유발 논란이 있었지만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현재 초등 교과서에 표기된 한자(총 22자)보다 더 많은 한자가 표기될 경우 관련 사교육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이유로 방향을 전격 선회했다. 관련 “찬반 단체 면담과 광화문1번가, 국민신문고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질과 절차 양면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표기를 늘리거나 유지하는 것의 교육적 효과, 즉 교육의 실질 문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한국어 어휘에서 한자어가 약 70% 정도를 차지하며, 대학 수준 전공 용어의 약 90%가 한자어임을 상기해 보자. 한자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어 읽기 능력 내지 문해력(文解力)을 제고하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해 신조어를 만들 때에도 한자 이해 능력은 매우 요긴한 상징 자산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은데, 그것은 비단 영어나 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한국어 읽기 능력과 관련되는 문제다. 거기엔 한자 이해 능력이 긴밀하게 관여돼 있다. 한국어 환경에서 한자는 지식의 영역 이전에 도구에 가깝다. 한자라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취약하면 한국인의 문해력은 물론 창의적 상상력을 심화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수준별·단계별로 한자에 대한 접촉 기회를 사려 깊게 제공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사교육 유발 우려도 그렇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교육 효과를 헤아려 해당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것이 먼저다. 정말 필요한데 가르치지 않는다면 외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형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지역이나 계층의 많은 학생, 또는 톨스토이 같은 가정학습 환경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 공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육 격차가 더 심화할 수 있음도 경계할 일이다. 만약 교육 과정에 편입되면 사교육이 우려된다는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역설적으로 공교육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음도 숙고해야 한다.
절차 문제도 아쉽다. 의견 수렴을 했다지만 초등학교 현장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교육만큼 미래에 영향을 주는 영역도 많지 않을 터이므로, 더 진중하게 토론하고 신중하게 합의를 이끌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학교를 살려야 나라가 살아난다. 학교다운 학교가 나라다운 나라를 이끈다. 초등 한자 교육도 학교를 살리는 작은 반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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