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대 개헌 모두 국민 뜻 앞세워
실제로는 주도 세력 정략 우선
文정권도 기본권으로 초점 이동

여권-야권 선호 개헌안 다르고
이슈별 유기적 관계 설정 난망
시행착오 포함 熟考 시간 필요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중요한 일성은 국민개헌이었다. 국민개헌에 대한 강조는 이번 개헌이 지난 아홉 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 과정과 전적으로 차별적인 절차를 거치겠다는 점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절 헌법 개정은 특정 정치 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거나, 집권 세력이 정권을 유지, 연장하기 위한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 다수였다. 1987년 민주화 직후 이뤄진 1988년 개정 과정 역시 민주화를 쟁취한 국민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략적 타협이었다고 비판받는다. 국민개헌에 대한 일성은 이러한 구태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위정자들 간 권력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진정한 동의에 기초해 개헌을 진행하겠다는 약속이다. 매우 중요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개헌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지 않겠다는 경우는 없었다. 대통령기록관의 역대 대통령 연설 기록문을 살펴보면 초대 대통령에 대한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했던 ‘사사오입 개헌’도 ‘국민 공의(公意)’에 따를 것을 약속했다. 제5공화국 헌법 역시 ‘전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제정’한 것이었다. 또한, 민주화 직후 이뤄진 개헌은 ‘국민과 여야의 합의에 따라 헌법과 잘못된 법률’을 고친 것이었다. 개헌을 주도했던 집권 세력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개헌이 국민의 뜻에 따라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 같은 주장이 개헌 주도 세력의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았을 뿐 실질적인 국민개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개헌이 미래 세대로부터 유사한 비난에 직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면, 진정한 국민개헌은 어떻게 실현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국민이 개헌에 대해 알고,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실천은 쉽지 않다. 우선, 국민이 개헌의 논의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개헌의 논의를 주도하는 정치 세력의 분열 때문이다. 정부와 야당이 선호하는 개헌의 내용이 다르다. 또한, 정부 내에서도 개헌의 중심 내용이 시기별로 달라진다. 대통령의 신년사 역시 권력구조 개편이 중심이었던 개헌에 대한 논의가 어느새 기본권과 지방자치에 한정되는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내용을 개헌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모아지지 않으니 국민은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해 회의를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헌 논의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은 어떤 내용의 개헌이 쟁점이 되는지, 어떤 내용은 합의가 쉬운지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이 진행된 논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제공하는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것이다.

둘째, 국민이 개헌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동안 헌법개정특위는 홈페이지의 운영과 국민 대토론회를 통해 국민의 참여를 유도해 왔다. 그러나 이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집단에만 개헌 논의를 제한한다. 국민이 생활 속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마련되지 않는 한 개헌은 지속적으로 일부 국민의 논의만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나마 일부의 참여는 개별 이슈에 대한 논의에 국한된다. 헌법은 개별 이슈에 대한 규정뿐만 아니라 이슈별 규정 내용의 유기성 및 논리적 일관성이 필요하다. 좋은 규정만을 모아둔 헌법이 아닌 좋은 규정들이 상호 조응하는 헌법이 돼야 한다. 그러나 개별 이슈에 대한 논의에 국한된 참여는 이슈 간 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참여로 확대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거 국민개헌은 국민이 개헌 과정에 대한 알 권리와 참여의 권리가 배제되고, 단순히 개헌 주도 세력에 의해 제안된 개헌안을 결정하는 권한만을 행사한 형식적인 국민개헌이었다. 이번 국민개헌도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안 통과 여부의 결정 권한은 국민에게 보장돼 있다. 다만, 이번 개헌이 과거와 달라질 수 있는 점은 국민이 개헌 논의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주고, 개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해 주는 데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개헌에 대한 일성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제안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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