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수 한양대 교수 IT경영학

국가적 과제인 가상화폐 문제와 관련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근 거래소 폐쇄를 여전히 ‘살아 있는 옵션’이라고 밝히는 등 사회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가상화폐 문제를 올바로 풀기 위해서는 그 탄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은행 간 대출 시장이 마비되며 금융시장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던 2008년 8월, 비트코인닷오아르지(bitcoin.org)라는 도메인이 등장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이 도메인 소유주 사토시 나카모토가 새로운 유형의 가상화폐 시스템 개발 소식을 전했다. 그는 이 가상화폐가 개인과 개인 간(P2P) 거래 기반으로 제3의 인증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중앙 집중적 화폐 통제 시스템에 대한 위기의식과 비판, 그리고 개인 간 신뢰에 대한 기대가 가상화폐 탄생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 유로화 등 기존 화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가상화폐는 더욱 관심을 끌게 됐다. 또한, 가상화폐는 익명성을 가졌고, 은행과 같은 제3자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으로 직접 보낼 수 있어 송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점 주목받게 됐다.

최근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논란은 가상화폐 자체의 문제이기보다는 실체를 알기 어려운 투기 자본과 경제적 소외감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상화폐의 거래가 국경 없이 이뤄진다는 점,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가상화폐가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특정 가상화폐의 거래를 한정된 지역 범위에서 금지하는 것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의 투기적 성격이 강한 가상화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투기 과열이나 세금 탈루 등의 부적절한 점은 강력한 법과 제도 보완으로 올바른 방식의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가상화폐의 산업적 측면도 중요하다. 가상화폐의 거래 장부에 해당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대표적인 핀테크 산업으로 꼽힌다. 핀테크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금융권의 신(新)성장동력으로 주목받으며 지난해 시장 규모가 약 800조 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 기관인 언스트영의 2017년 글로벌 핀테크 활용도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국가는 도입 단계를 넘어 초기 대중적 활용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한국은 세계 평균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장조사 기관인 KPMG의 100대 핀테크 기업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조사 시작 이래 우리나라 기업이 여기에 포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인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선 우선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전 규제를 줄이되 책임질 주체를 명확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핀테크의 기술적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기술 중립성 원칙이 구현돼야 하며 이에 따른 전자금융 업종 규율이 다시 설계돼야 한다. 오프라인 중심인 금융 분야의 낡은 틀을 정비해 금융 혁신과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법정화폐가 유통되는 세상과 가상화폐가 유통되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갈 것인지가 당면한 과제다. 섣부른 규제가 아니라, 금융 당국의 세심하고 깊이 있는 대응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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