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가 영화화됐던 1962년 무렵의 단성사. 당시 영화는 예술이 정치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가 영화화됐던 1962년 무렵의 단성사. 당시 영화는 예술이 정치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극장, 정치를 꿈꾸다 이상우 지음/테오리아

일제강점기·분단시대 배경
역사·젠더 등 네가지로 분류
욕망에 숨겨진 뒷면 들여다봐

김옥균 등 당시 인물 내세워
왜곡된 사회적 인식들 보여줘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1980년 저작 ‘누가라’에서 극장국가(劇場國家)란 표현을 썼다. 누가라는 네덜란드 통치하에 있던 19세기 인도네시아 발리의 국가 정치 구조를 분석한 책이다. 기어츠는 신의 자손을 자처하는 발리의 왕족이 위계에 맞는 의례를 연극적으로 표상함으로써 국가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극장정치는 이런 극장국가에서 벌어지는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적인 이벤트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극장보다는 정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저자인 이상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와는 반대로 정치보다 극장에 초점을 맞춘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에 관객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극장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욕망을 표현했는가다.

이 교수는 극장의 문화정치를 역사, 젠더, 민족주의, 영화 등 크게 네 가지로 분석했다. 극장에서 다뤄지는 역사극에 정치학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젠더와 민족주의는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영화적 욕망의 배후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짚었다.

구한말의 개화파 김옥균(1851∼1894)은 역사적으로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김옥균은 독립을 주장하며 갑신정변(1884)을 일으켰기에 근대개혁운동의 혁명가로 기억되는가 하면, 일본의 힘을 빌려 정변을 꾀했다가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의 원조로 폄하되기도 한다.

이는 김옥균을 다룬 문화텍스트가 서술 주체에 따라 서로 다른 기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소설을 도입한 이인직은 ‘은세계’에서 김옥균을 문명개화의 선구자로 묘사하지만, 정교는 ‘대한계년사’에서 김옥균을 울릉도의 삼림을 일본에 몰래 팔아먹은 파렴치범으로 그린다. 저자는 “그 문화텍스트를 담는 미디어·자본, 정치권력, 대중의 기억 욕망이 서로 경합을 벌여서 특정한 기억이 구성된다”고 밝혔다.

김옥균이 극장의 역사적 의의를 보여준다면, 극장 속에서 표현된 여성 혹은 젠더의 문제점을 웅변하고 있는 인물은 김명순(1896∼1951)이다.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생명의 과실’ ‘애인의 선물’ 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김명순은 실로 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맞선 본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오히려 남성 지식인들에게 인신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의 젠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보여준다.

민족주의 작가 오영진(1916∼1974)이 한글이 아닌,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해야 했던 것도 극장적 상황에 따른 모순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영진은 ‘배뱅이굿’(1942), ‘맹진사댁 경사’(1943), ‘한네의 승천’(1972) 등 이른바 ‘민속의례’ 3부작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어가 국어로 강제되는 상황에서 식민모국의 언어로 민족주의를 말해야 했다. 저자는 “일본의 강제점령에 시달렸던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 나온 ‘외지 일본어문학’을 단순히 민족을 배신한 행위로 재단하기보다 1930∼1940년대 일본 점령하의 동아시아 대제국에서 발생한 초민족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분야에서 극장정치의 한복판에 있던 인물로는 신상옥(1926∼2006) 감독이 있다. 신 감독은 박정희 정권과 밀월관계였고, 김정일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어느 쪽에서도 진정한 창작의 자유를 얻지 못했다.

저자는 “분단시대 신 감독에 대한 성찰은 단순히 영화작가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예술이 처한 모순적 상황에 관한 성찰일 것”이라고 평했다. 392쪽, 1만9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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