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 부장

최근 한 서점의 집계 결과 지난 한 달간 자기계발서의 매출이 전월 대비 134%나 증가했다고 한다. 새해, 자기계발서를 펴들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읽힌다.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하찮은 것들엔 신경을 끄자고 말하는 자기계발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한 대형 서점은 2018년 책 시장의 키워드를 ‘나에게 길을 묻다’로 선정했다. 2016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 새 시대에 대한 열망, 이를 위한 과제에 집중한 책들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는 개인이 자신의 나아갈 길에 대해 묻는 책들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옛 자료를 좀 살펴봤더니 최근 10여 년간 우리 베스트셀러는 흥미롭게도 외부를 향한 사회적 열망과 개인적 모색, 다르게 보면 희망적 도전과 좌절된 열망이 번갈아 교차해 왔다. 예를 들어 2010년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사회적 정의 문제를 제기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지만 뒤이은 2011년엔 슬픔과 슬럼프에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 이겨낼 용기를 갖자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2012년엔 삶은 성취가 아니라 편안한 멈춤에 있다고 위로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어 2013~2014년엔 100세 주인공의 기상천외한 모험을 담아 긍정 에너지를 발화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2015년엔 다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자기계발서 ‘미움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 1위였다. 약간 무리가 있는 일반화지만 정치적 시대 구분으로 보면 정권 초기엔 사회적 열망을 다룬 책이 주목받았다가 후기엔 좌절된 개인을 위로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회적 희망을 품어 보지만 또다시 좌절해 어깨를 늘어뜨리며 스스로 위로하는 사이클이 반복돼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의 ‘나에게 길을 묻다’라는 전망 속 ‘나’는 희망이 좌절돼 자기 속으로 퇴화하는 이전의 ‘나’들과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의 근거는 지난해부터 눈에 띄기 시작해 올해 들어 더욱 활발하게 나오고 있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등 한국 사회에서 폐쇄적 권력 집단으로 여겨져 온 전문가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내놓는 책들이다. 의사, 판사,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야 언제나 책을 내왔지만, 이전에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책을 썼다면 최근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2018년 서점가에 새롭게 등장한 주목할 만한 ‘나’는 위로와 연민의 ‘나’가 아니라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변화를 만들어 내려는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책 시장 안에서만 등장했다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길을 묻는 나’들이 사회 곳곳에서 등장해 우리가 거둔 정치적 변화를 보다 성숙한 변화로 만개시키길, 그래서 또다시 힘없는 많은 ‘나’들이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 그런 퇴행적 사이클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다리고, 기대한다.

ch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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