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이 없는 건 비상식적”
“판사들 나서서 권위 떨어뜨려”
최고위층으로 내홍 확산 조짐


‘사법부 블랙리스트’(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 의혹 해소에 나선 추가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나자마자 의혹은 더 커지고 사법부 내홍도 더 깊어졌다. 특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항소심 재판부 동향 파악’ 건과 관련한 추가조사위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 전원이 나서 공식 반발했다. 조사위 활동의 ‘총 책임자’ 격인 김 대법원장 면전에서 대법관 전원이 공식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이번 사태는 사법부 최고위층 간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의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4일 “대법관들을 ‘거수기’로 만드는 우스운 조사 결과”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나서 대법관 권위를 떨어뜨리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별도 3차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지역 한 판사는 “원세훈 재판의 1·2심 결론이 다른데,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이 하나도 없이 13대 0으로 선거법 위반 유죄 취지가 파기된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은 22일부터 시작됐다. 조사위는 당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이 선고된 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원행정처에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했다”고 말한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실제 이 사건은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은 지논, 시큐리티 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전원일치 판단으로 파기환송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대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대법관 13명은 23일 오후 원 전 국정원장 사건과 관련해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대법관들이 자신들의 재판과 관련해 성명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간담회에는 김 대법원장이 참석했고, 성명을 내는 데도 동의했다는 전언이다.

대법관들이 조사위 활동과 관련해 간접적으로 김 대법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관들이 ‘사법부 독립’을 내세워 표면적으로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반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의혹 제기가 가능하도록 섣부른 조사 결론을 낸 조사위에 대해 정면 반박한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다.

서울중앙지검은 24일 지난해 5월 시민단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1부에서 공공형사수사부로 재배당했다. 공공형사수사부에는 이미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명수 대법원장 등을 고발한 사건이 배당돼있다. 검찰 관계자는 “본격적인 수사 착수 상태는 아니며 향후 관련 사건의 진행 추이를 지켜보며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기은·김리안 기자 son@munhwa.com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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