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우 뭐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에서 송몽규를 연기할 때 온몸을 가득 채웠던 기개와 기운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듯했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오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은 극 중 대역 없이 신들린 듯 피아노 연주를 하듯, 오진태라는 탈을 쓰고 마구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연기 9단’이라 불릴 만한 선배 배우 이병헌, 윤여정 옆에서 그의 존재감을 조금도 묻히지 않았다. 이미 숱한 작품에서 발견되고 또 발견됐던 배우 박정민, 그런데 이 날것 같은 배우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또 발견됐다.

◇오진태 역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작품 끝나고도 오진태스러운 몸동작이 나오곤 하나.
=차기작인 영화 ‘변산’을 찍을 때는 스태프 몇 명이 저를 보며 오진태의 행동을 따라하기도 했어요. 아직 제 몸에 그 행동이 익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진태처럼 움직이고 있을 때가 있어요. 지금은 많이 안 그래요.

◇정말 잘하더라. 자신의 그런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편인가.
=잘 못 봐요. 제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 보면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져요. 잘못한 것만 눈에 보여서요. 이번에도 남들은 캐치 못할 수 있는데 제가 집중력을 잃은 순간이 자꾸 보여요. 그러다 막판 30분 정도는 온전히 영화를 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슬픈 장면에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진태라는 인물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실제 그런 상황에 놓인 분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그분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외부인인 제가 가서 감히 관찰하고 휘젓고 다니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관찰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분들에 대한 존중이나 진심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죠. 그때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그 과정이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봉사활동을 끝내는 마지막 날, 제가 익힌 그분들의 특징을 이용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비록 연기지만 정말 편견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어요.

◇피아노 실력이 대단하더라. 대역 없이 소화했다고 들었다.
=100% 제가 쳤어요. 하지만 피아니스트처럼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없고 싱크를 맞추는 연기를 했죠. 제가 비슷한 자세로 건반을 누르지 않으면 핸드 싱크가 안 맞았어요. 실제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니스트의 동영상을 봤는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의 동작과는 달랐어요. 엉뚱하고 웃음이 날 때도 있었죠. 다양한 특징 중 진태에게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살펴봤어요.

◇박정민은 어떤 식으로 연기하는 배우인가.
=원래 연기할 때 계산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걸 버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이 영화도 대부분 그냥 현장에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계산 정도만 하고 촬영했어요. 피아노 치는 장면도 시나리오에는 ‘피아노를 친다’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한 곡을 치는 모습을 설계했죠.

◇영화 ‘레인맨’ ‘아이엠 샘’ ‘말아톤’ 등 비슷한 질감을 가진 영화들은 각 출연자들의 대표작이 됐다. 이 영화 역시 그렇게 될 것 같은가.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뒷받침돼야 하니까요. 굳이 그런 작품들을 의식하지 않고 제 연기에만 신경쓰려고 노력했어요. 그 영화들을 다시 챙겨보지도 않았죠. 제가 ‘흉내낼까’ 걱정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피해갈까’겁이 났어요. 일부러 다르게 하려 하면 정말 잘못된 방향으로 연기하게 될까 봐 걱정됐죠.

◇이 영화에서 이병헌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황정민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두 동갑내기 선배는 어떻게 다른가.
=황정민 선배님은 뜨겁고 이병헌 선배님은 차가워요. 제가 각각 느끼는 매력은 그거예요. 황 선배님에게는 열정 가득한 매력이 있죠. 아무래도 식구로 지낸 지가 꽤 됐으니 그분만의 애정표현이 있어요. 가끔은 아버지처럼 혼내시기도 하고, 가끔은 힘드냐고 묻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제가 일을 쉬지 않고 해오며 고비가 있었어요.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았죠. 그때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주셔서 자기 경험에 비춘 조언들을 해주셨죠. 그 이야기를 듣고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제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 선배님은 이 한참 어린 녀석을 후배가 아니라 한 명의 동료 배우로 봐주시는 게 진짜 감사했어요. “합 맞춰보게 와봐”라고 말하는 선배가 아니라 곁에 있는 동료 배우였어요. 이런 대우가 그 어떤 조언보다 힘이 될 때가 많았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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