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백미’ 알파인스키, 드라마틱한 열전
빠르게. 더 빠르게. 고속도로 속도제한은 보통 80㎞, 100㎞다. 그 이상의 속도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뜻. 그런데 동계스포츠에선 100㎞를 훌쩍 넘기는 종목이 여럿 있다. 장비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150㎞ 이상의 초고속 스피드는 보는 이에게 짜릿함을 전해준다. 물론 보호장구를 착용하더라도 선수에겐 공포심을 안기는 수준까지 체감속도는 올라간다.
‘스피드 전쟁’이 동계올림픽의 백미. 얼음트랙을 빠르게 내려오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 썰매 종목이 가장 빠를 것으로 보이지만 ‘넘버원’은 따로 있다. 가파른 슬로프를 쏜살같이, 번개처럼 질주하는 알파인스키 활강은 속도의 한계에 도전하는 종목. 프랑스의 요한 클라레는 2013년 1월 스위스 벵겐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알파인스키 남자 활강에서 시속 161.9㎞의 순간 최고속도를 작성했다. 비공식 최고 기록. 이후 시속 160㎞를 넘기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고, 140㎞는 이제 기본이 됐다.
알파인스키 활강이 빠른 이유는 물론 있다. 알파인스키는 슬로프에 설치된 기문을 지그재그로 통과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쪽이 승리한다. 활강, 슈퍼대회전, 회전, 대회전, 그리고 복합 등 5개 세부 종목으로 나뉘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혼성 단체전이 추가돼 남녀 총 11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활강과 슈퍼대회전은 스피드, 회전과 대회전은 기술 종목으로 분류된다. 평균속도를 기준으론 활강-슈퍼대회전-대회전-회전 순서다.
통과하는 기문의 수와 기문 간의 간격이 다르게 세팅되고 이에 따라 속도에 차이가 생긴다. 회전과 대회전은 촘촘하게 기문을 심어 코스를 구성하기에 턴 기술에 따라 성적이 갈린다. 강력한 발목과 무릎 힘으로 잦은 턴을 이겨내야 하며 부드러운 기문 통과가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 회전 기문은 남자부 55∼75개, 여자부 45∼60개로 알파인스키 중 가장 많고 기문 사이의 거리는 최소 75㎝, 최대 13m에 불과하다. 대회전의 기문은 남자부 50∼55개, 여자부는 45∼50개다.
반면 활강은 기문이 거의 없다. 활강은 기문 수와 관련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따라서 슬로프를 직선으로 빠르게 내려온다고 보면 된다. 슈퍼대회전은 대회전보다 코스가 가파르고 기문 사이를 25m 이상으로 벌렸다. 슈퍼대회전의 기문은 남자 35개 이상, 여자 30개 이상이다.
활강과 슈퍼대회전, 그리고 회전과 대회전은 알파인스키에 속하지만, 성격이 다르기에 경기장도 다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정선알파인경기장에서 활강과 슈퍼대회전, 복합이 펼쳐진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은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에 자리 잡았다. 경기장 선정 당시 가리왕산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발이 있었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남녀 통합 코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남녀 통합 코스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 남녀 선수들은 출발 지점만 다를 뿐, 대부분 코스를 같이 이용한다. 또 주요 식생 군락지 7곳을 피해서 슬로프를 마련했다.
남자 활강의 코스 길이는 2857m이며 평균 경사각은 29도에 이른다. 심한 곳은 40도가 넘는다. 게다가 슬로프에 물을 뿌려 열려버린다. 얼음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셈. 또 코스 중간엔 점프 구간 3곳을 마련한다. 시속 160㎞의 속도로 내려오던 선수들의 운동에너지가 높은 점프로 이어져 수십 m를 날아가게 된다. 활강은 남자부를 기준으로 출발 지점 고도가 1370m, 결승 지점 고도는 545m로 표고차가 825m에 이른다. 슈퍼대회전은 출발 지점 고도가 1195m, 결승 지점 고도는 545m로 표고차는 650m다. 선수들은 슬로프 입구에 마련된 전용 곤돌라를 타고 출발 지점으로 올라가며 일반 팬들은 리프트를 타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은 총 65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좌석은 3600개다. 엄청난 스피드의 경연장이기에 선수는 물론 관중의 부상에 대비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 구급차 3대 이상을 상시 대기시킬 예정이며, 코스 구간별로 스키로 이동할 수 있는 의료진도 배치한다. 움직이기 어려운 부상자가 발생할 땐 헬기가 투입된다.
실제로 활강, 슈퍼대회전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1994년 월드컵에선 울리케 마이어(오스트리아)가 남자 활강 도중 코스를 이탈, 안전 펜스와 충돌해 목숨을 잃었다.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선 당시 ‘스키황제’로 군림했던 헤르만 마이어(오스트리아)가 활강 도중 80m가량을 날아갔다. 안전그물에 걸리지 않았으면 계속 날아가고 미끄러지는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마이어는 그러나 유유히 손을 흔들며 걸어 나왔고, 이후 대회전과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당시 팬들은 ‘터미네이터’처럼 마이어가 살아 돌아왔다는 뜻으로 ‘헤르미네이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여자 슈퍼대회전 출전자 49명 중 31명만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회전과 대회전은 용평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용평알파인경기장은 1998년 지어진 용평리조트의 슬로프 일부를 국제규격에 맞게 보완해 조성했다. 관중 6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좌석은 2500개다. 기술 종목이기에 정선알파인경기장보다 코스가 짧다. 회전은 남자 575m, 여자 556m이며 대회전은 남자 1326m, 여자 1250m다. 평균 경사각은 35도이지만, 정선알파인경기장보다는 경사가 고른 편이다. 회전은 남자부를 기준으로 출발 지점 고도가 1172m, 결승 지점 고도는 961m로 표고차는 211m이며 대회전은 출발 지점 고도 1408m, 결승 지점 고도 968m로 표고차는 440m다.
용평알파인경기장엔 미국과 스위스, 스웨덴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하우스가 마련된다. 옛 매표소가 있던 공간에 건물을 신축했다. 내셔널 하우스는 각국 올림픽위원회가 출전 선수들을 지원하고 또 보호하기 위한 곳이다. 선수단에 음식을 제공하고 편안히 휴식을 제공하며 아울러 국가 차원의 홍보전을 펼친다. 미국, 스위스, 스웨덴의 하우스가 용평알파인경기장에 설치됐다는 건 북미와 유럽에서 알파인스키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활강과 슈퍼대회전은 단 한 번의 레이스로 순위를 가린다. 기술 종목인 회전과 대회전은 이와 달리 1, 2차 시기 합계를 따진다. 올림픽과 월드컵 활강에선 공식 경기 전 3일간의 연습 레이스를 의무적으로 둬야 하며 선수들은 이중 최소 1회 이상 참가해야 본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수 헬멧 착용은 기본이며, 기문을 통과할 때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강이로 기문을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정강이 보호대도 부착한다.
활강과 슈퍼대회전에선 휘어진 폴을 사용한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슬로프를 내려오기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반면 회전의 폴은 직선이다. 턴을 할 때 슬로프에 폴을 갖다 대기에 편하고 또 브레이크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스키 길이는 활강이 최소 남자 218㎝, 여자 210㎝이다. 슈퍼대회전은 남자 210㎝, 여자 205㎝이며 대회전은 남자 195㎝, 여자 188㎝다. 회전은 남자 165㎝, 여자 155㎝로 가장 짧다. 스키가 길수록 슬로프에 닿는 면적이 커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반대로 회전, 대회전은 재빨리 방향을 바꾸기 위해 짧은 스키를 사용한다.
남자부에서 스빈달은 6차례 월드컵 활강 레이스에서 우승 2회, 준우승 2회, 3위 1회 등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스빈달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선 슈퍼대회전 금메달, 활강 은메달, 대회전 동메달 등 ‘잡식성’의 면모를 보였지만 소치동계올림픽에선 활강 4위, 슈퍼대회전 7위로 체면을 구겼다. 활강 랭킹 2위인 베아트 포이츠(31·스위스)는 평창에서 역전을 노린다. 포이츠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데뷔 무대를 치렀지만 활강 13위, 슈퍼대회전 27위, 복합 15위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포이츠는 올 시즌 월드컵 활강에 6차례 출전해 우승과 준우승 2회씩을 차지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랭킹포인트는 스빈달이 452점, 포이츠가 442점으로 불과 10점 차이여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박빙의 승부가 기대된다.
고지아는 5차례 월드컵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번에 올림픽 무대에 데뷔한다. 여자부에선 그러나 린지 본(34)과 미케일라 시프린(23·이상 미국)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과 시프린은 기량과 미모를 겸비한 라이벌. 시프린은 활강 랭킹은 3위,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하던 본은 5위다. 랭킹은 뒤지지만 화려한 이력을 뽐낸다. 본은 월드컵에서 개인 통산 79승으로 여자부 최다우승자로 등록돼 있다. 본은 특히 활강에서 40승, 슈퍼대회전에서 28승을 거둔 스피드 여왕. 시프린은 회전과 대회전이 주종목이지만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활강, 슈퍼대회전, 복합까지 5관왕을 노리고 있다.
본은 활강, 슈퍼대회전 전문가답게 잦은 부상에 시달려 올림픽 성적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본은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도중 다치는 바람에 활강 8위, 슈퍼대회전 7위에 그쳤고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활강 금메달, 슈퍼대회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소치동계올림픽엔 부상 탓에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은 알파인스키의 불모지다. 정동현(30·하이원리조트)은 올 시즌 월드컵 회전 8차례에 출전해 6번이나 1차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정동현은 지난해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회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선 톱10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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