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가상화폐 때문에 나라 안팎이 난리다. 투기 광풍에 갈팡질팡하던 정부는 오늘부터 거래실명제를 도입해 일부 제도화에 나섰다. 이웃 일본에서는 사상 최악의 거래소 해킹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졌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로도 불리는 이 신종 통화는 블록체인, 즉 ‘디지털 공공 분산 장부’ 기술을 화폐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디지털’은 전자기록을 뜻한다. 즉시성, 무한복제가 특징이다. ‘공공’은 모두에게 공개되는 투명성을, ‘분산’은 기록을 네트워크로 공유한다는 의미다. 흐름은 이렇다. 새 거래가 이뤄지면 그 정보를 네트워크 참여자 전원의 장부와 실시간 대조한다. 과반수의 장부에 적힌 기록과 일치해 거래의 진실성이 입증된 디지털 장부 1쪽을 블록이라 한다. 암호화돼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거래 사실도 검증됐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이를 기존 장부에 계속 연결(체인)하면 모든 거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의 흐름을 안전하고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정 시간 단위로 갱신된 새 장부의 복사본을 다시 전원이 분산 보관하면 따로 장부보관처가 필요 없다. 장부를 한군데서 모아 정산하는 전통 금융체계와 다르다.

블록에는 가치의 이전이나 신용 보증 등 거래 당사자 간 신뢰를 요구하는 모든 변동 정보가 담길 수 있다. 벌써 다이아몬드나 소고기 등의 유통 경로나 해상운송 같은 물류 이동정보, 병원과 학교의 개인기록을 블록체인으로 구축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스웨덴은 토지대장 블록체인화를 구상 중이라 한다. 복덕방과 등기소가 없어진다. 아마존, 구글 등 전자상거래나 검색의 허브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중개자와 중앙통제소 없이 개인 대 개인(P2P)의 정보교환, 즉 분산장부 대조로 계약 등에 필요한 신용확인 절차가 완결돼 시간,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으로 각광 받는다. 탈중앙화된 신뢰 시스템 구축이 그 힘이다. 디지털 기반의 글로벌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고 할까. 하지만 우리는 새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러했듯 공포와 열광 사이를 오가고 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블록체인이 뭔지 잘 모른다. 그 바탕인 P2P 기술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공짜 음원과 동영상을 다운받기 위해 냅스터나 토렌트를 헤매본 적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다르다. 파괴적 신기술이 음악·게임 같은 청소년 영역을 침범할 때 무심했던 기성세대는 택시나 숙박 시장에 공유 기술이 들어오자 좀 당황하더니, 이번에 시장경제의 핵심인 통화 체계를 겨냥하자 아예 공포에 질렸다.

가상화폐 난리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막연한 공포, 혹은 지나친 기대심리 때문에 빚어지는 촌극이다. 아인슈타인이 E=mc2을 발표한 이래 세계는 곧 핵전쟁으로 멸망할 거란 망상에 시달렸지만 인류는 원자력발전으로 악마와 천사의 균형을 찾았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외장(外裝) 뇌에 의존하는 손가락 바보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호모 모빌리쿠스의 역동성으로 희석됐다. 신기술을 열린 마음으로 아기처럼 주의 깊게 보살펴야 한다. 처음부터 악마로 태어난 기술은 없다. 설사 그런 성향이 있더라도 부모가 잘만 키우면 건전한 성인으로 자라난다. 그게 우리 몫이다.

no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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