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환율 사실상 내버려둬
韓엔 정책 불신탓 압박 강화
“환율변동 등 실물경제 감안땐
세계경기호조와 역행 가능성”
미국이 최근 한국에 대한 강도 높은 무역 압박에 나섰으면서도 유독 일본에 대해선 침묵을 유지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원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화 대비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일본 엔화는 상대적으로 약세 기조여서 글로벌 수출 경쟁력 악화가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북핵이슈에서 서로 다른 기류인 한·미, 미·일 관계가 경제 협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대미 외교 전문가인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한국과 일본에 대해 달리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은 미국이 보내는 ‘신뢰도 차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부원장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내 고위 인사들은 한결같이 ‘문재인 정부를 우리가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점을 물어봤다”면서 “미국은 일본의 경우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대가로 무역이나 환율 면에서 큰 압박을 하지 않고 사실상 뜻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어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해서 보다는 무역 압박 강도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선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정부’ 쪽인 줄 알았더니 ‘노무현 정부’ 쪽인 것 같다는 말까지 한다”고 전했다.
전직 금융 당국 고위 인사도 “과거 외환위기 등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미국은 경제와 외교를 동일시하는 측면이 있다”며 “일본은 환율의 면죄부를 받고, 우리는 ‘환율조작국’ 이슈 때문에 이 면죄부를 못 받는다면 이는 미국과의 원만한 대화와 신뢰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의 통상 압박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대외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 상황은 불안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회복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시장 악화, 제조업 가동률, 환율 등 실물경제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세계적인 경기 호조 흐름과는 다른 경로를 걸을 수도 있다”면서 “수출 증가 등 특정 지표에 가려져 제조업 전반에 퍼져 있던 부실한 증후들을 감지해 대처하지 못한다면 자칫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제조업 가동률은 71.8%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67.6%) 이후 29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12월 고용동향을 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이 9.2%로 전년 12월보다 0.8%포인트나 급등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모든 경제위기는 항상 통화가치의 고평가에서 시작된다”며 “이어 수출실적이 악화하고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진 뒤 기업과 금융권의 부실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김만용·최재규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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