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식물 종의 90% 가까이가 균류와 땅속 연합을 이룬다며 숲과 도심의 울창한 공원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은 절반의 진실만 보는 셈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전북 순창의 이 아름다운 나무에서도 절반의 모습밖에 못본다  자료사진
저자는 식물 종의 90% 가까이가 균류와 땅속 연합을 이룬다며 숲과 도심의 울창한 공원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은 절반의 진실만 보는 셈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전북 순창의 이 아름다운 나무에서도 절반의 모습밖에 못본다 자료사진

- 나무의 노래 데이비드 /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아마존·맨해튼 도심 등서 서식
콩배·개암 나무 등 12種 관찰

나무는 혼자 존재하는 것 아닌
인간과 소통하며 연결돼 있어

자연은 다양한 소리를 내며
다른 존재들에게 말 걸어와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
인간의 모든 행위들 속해 있어


미국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관조적 성찰로 유명하다.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학, 코넬대에서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을 전공한 그는 1년 동안 오래된 숲 1㎡를 관찰해 그 속에 살아가는 균류, 지의류, 나무와 꽃, 곤충과 동물에 이르는 모든 생물의 삶, 생존과 진화사를 풀어낸 첫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로 ‘과학과 시를 넘나드는 자연 문학의 새로운 장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무의 노래’는 ‘숲에서 우주를 보다’로 2013년 미 국립학술원 최고의 책, 리드 환경 저술상 등 각종 상을 받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나무의 노래’ 역시 관찰과 관조, 탐구와 성찰이 함께한 시로 쓴 과학책이다. 스포이트로 쪼개진 통나무 속 진흙 물웅덩이에서 뽑아 올린 액체 한 방울을 400배 배율로 관찰하면서도 올리브 꽃가루에선 6500년 전 따뜻한 남쪽 방향으로 자란 올리브 씨앗을 먹는 서양낭 비둘기의 날갯짓을 생생하게 상상한다. 지식은 세밀하고, 상상은 문학적이며, 문장은 아름답다.

책은 저자가 수년에 걸쳐 아마존 열대우림의 케이폭 나무부터 세인트 캐서린스 섬 모래사장에서 자라는 사발 야자나무, 스코틀랜드의 개암나무, 덴버 강변의 미루나무, 맨해튼 도심의 콩배나무, 이스라엘의 올리브나무, 일본의 섬잣나무 등 전 세계 나무 열두 종과 그 나무를 중심으로 한 생명의 그물망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비계를 만들어 타고 올라가 숲 지붕을 살피고, 죽은 나무에 돋보기를 갖다 대고, 맨해튼 가로수인 콩배나무에 전자장비를 부착해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 이를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이다. 나무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과 균류, 동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인간과 서로 대화하는 생명의 연결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연결망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가장 예민하게 여는 감각은 ‘나무의 노래’라는 제목대로 청각이다. 그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케이폭 나무의 판근을 두드리면 나오는 초 저음역 진동을 감지하고, 콜로라도 로키 산맥의 폰데로사소나무에 초음파 센서를 대고 나무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왜 나무의 노래인가’에 대해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때로는 이파리를 씹고, 열매를 먹어 느끼는 맛과 달리 청각은 인간이 나무를 대할 때 거의 쓰지 않는 감각이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나무도 소리를 내고 있다고, 그 소리로 생명을 유지하고, 인간을 포함해 다른 존재들에게 말을 건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주로 시각에 의지했던 기존의 나무나 숲 책들과는 다르다. 책을 펼치면 나무의 소리, 그 아래를 기어 다니는 벌레의 소리, 위를 날아가는 새소리로 가득하다.

이와 함께 자연과 인간의 연결망에 대한 독특한 시선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적인 만큼, 도시 또한 자연적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보도,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물질은 모두 영장류의 진화된 정신 능력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미루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 아메리카 물까마귀의 부름 소리나 삼색제비의 둥지 못지않게 자연적”이라고 했다. 도시, 문명, 환경에 대한 ‘상식’을 거스른다. “우리가 나머지 모든 생물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고 우리의 몸이 똑같은 자연법칙에서 생겨났다면, 인간의 행위 또한 자연적 과정”이라고 “따라서 에오세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인한 자연의 파괴와 멸종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자연의 위대한 생물 그물망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입장에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문명을 버리고 숲에 오두막집을 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세속의 인연을 끊고 동굴에 들어간 히말라야 은둔자보다 아마존에서 살아가는 와오라니족이 훨씬 더 인간과 자연의 연결망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저자의 설명에서 그의 뜻을 감지하게 된다. 아마존 서쪽에서 수천 년간 살아온 와오라니 족은 100% 친자연적이지 않다. 살기 위해 풀과 나무를 베고 동물을 사냥하고, 식민주의자와 다른 아마존 부족에게서 자기네 문화를 지키려고 총과 같은 치명적 수단도 쓴다. 외래 식물종도 들여와 경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식물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명과 연결돼 있느냐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숲에서 길을 잃으면 나무를 두드려 그 진동을 따라 부족민들이 찾아오게 한다. 인간의 삶의 방식과 문명을 자연에 반하는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생명의 긴 역사가 만들어낸 그 모든 것을 연결망 안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도 있으며, 인간 공동체는 자연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연결망 속의 나무 열두 종, 나무 열두 종이 보여주는 생명의 연결망을 관찰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생명은 그물망이기에 인간과 동떨어진 자연이나 환경 같은 것은 없다. 인간 대 자연이라는 이분법이 수많은 철학의 핵심에 들어 앉아 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허상이다.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로 이루어진 생명 공동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포크송 가사를 빌리자면 ‘우리는 이 세상을 여행하는 나그네(Wayfaring strangers traveling through this world)’다. 우리는 (워즈워드가 서정시에서 이야기한)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사물들의 아름다운 형상을 일그러뜨리는’ 인공의 ‘고인 못’에 들어간 소외된 피조물도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의 과학과 예술은 자연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윤리는 속함의 윤리여야 한다. 인간의 행위가 세상의 생물 그물망을 끊고 멋대로 연결하고 마모시키는 지금, 이 윤리는 더더욱 긴박한 명령이다. 따라서 자연의 위대한 연결자인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관계 속에, 근원과 재료와 아름다움을 생명에 부여하는 관계 속에 깃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372쪽, 2만 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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