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의 공식 팬클럽인 ‘남진 세상’의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식당에서 각각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남진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가수 남진의 공식 팬클럽인 ‘남진 세상’의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식당에서 각각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남진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가수 남진 팬클럽

中1때 꽃핀 팬심 50년 이어져
아이들 다 키워놓고 활동 시작
해외·지방 찾아다니며 ‘응원’

온라인 카페서 사진·정보공유
취미생활 같으니 금세 친구돼
한달에 한번만나 情·수다나눠

가족들, 티켓선물하는 등 지원
“나이 들어 주책이다” 말하지만
남진 노래하는 한 함께 하겠다


“우리는 남진 오빠를 50년 동안 좋아했어요. 오빠 좋아하는 마음은 요즘 아이돌 팬들과 비교가 안 되죠. 우리는 일편단심이에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가수 남진 팬클럽 회원 5명은 남진 이야기가 나오자 너도나도 팬심을 자랑했다.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남진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고, 결혼으로 가정이 생기면서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중년이 돼서야 팬클럽 활동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남진을 좋아했던 김정애(여·64) 씨는 아이들을 다 키운 후 다시 팬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바쁜 일상 때문에 텔레비전으로만 남진을 보고 노래만 듣다가 10년 전부터 다시 콘서트, 디너쇼에 가기 시작했다. 김 씨는 “아직도 10대 때 좋아하던 마음 그대로 너무 설레고 노래를 들으면 행복하다”고 전했다. 김 씨는 “50대가 돼서 다시 남진 오빠를 가까이서 봤을 때 너무 좋아서 울컥 눈물이 났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팬클럽 회원들은 아이돌 팬들과 다름없이 콘서트와 공연들을 다니며 남진 사진과 응원 문구가 적힌 카드 등을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부른다. 지방 공연의 경우 팬클럽에서 공연 갈 사람을 모집해 모여서 가고, 회비를 걷어서 꽃을 전달한다. 팬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한증섭(62) 씨는 “다른 가수와 합동 공연을 할 때도 팬클럽 회원들이 꽃을 들고 대기실을 방문하면 동료 가수들이 ‘남진 안 죽었네’‘남진 대기실은 더 넓어야겠어’라며 부러움 섞인 말을 한다”며 “그럴 때마다 팬클럽 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껴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2008년에는 돈을 모아 1972년 남이섬에서 있었던 팬미팅을 재현하기도 했다. 버스를 직접 빌려 전국의 팬 200여 명과 ‘남진 노래교실’‘노래자랑대회’ 등의 코너를 진행했다. 2008년 남이섬 팬미팅에 참석했던 오연균(62) 씨는 팬클럽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오 씨는 “1972년에는 버스 수십 대가 남이섬에 몰렸을 정도로 성황리에 치러진 행사였기 때문에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는 손에 꼽히는 팬미팅 중 하나”라며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팬클럽은 1년에 한 번씩 60~70명의 회원이 남진과 만나는 정기모임을 갖는다. 남진의 생일에는 다 모여 생일파티를 한다. 온라인에서도 남진 관련 사진과 공연 일정을 공유하고 댓글을 다는 등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다양한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은 “젊게 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남진을 만나기 위해 서울 곳곳은 물론 지방과 해외까지 다니다 보니 집에 있을 때보다 시야가 넓어진다. 콘서트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그곳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즐긴다. 민병숙(여·66) 씨는 남진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민 씨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몸을 움직이고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무래도 집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 활동적으로 젊게 산다”고 밝혔다.

이렇게 활발한 팬클럽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가족들의 지원도 있었다. 자녀들이 디너쇼나 콘서트 티켓을 선물하고, 배우자도 지방 공연 일정까지 알아봐 준다. 손복자(여·63) 씨는 “팬클럽에 처음 가입하게 된 것도 남편 덕분이었다”며 “남편이 먼저 남진 팬클럽을 찾았는데 나에게도 가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손 씨는 남편과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를 배웠고, 이제는 온라인에서 팬클럽 활동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됐다. 김 씨도 “팬클럽 모임이 있다고 하면 남편이 데려다주는 경우도 있고, 자녀들이 용돈을 챙겨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진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이 다른 가수들의 팬클럽 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응원한다. 손 씨는 HOT 팬인 딸과 함께 공연을 가기도 하고 앨범을 직접 사다 주기도 했다. 민 씨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딸이 지방 공연을 가겠다고 하면 두말없이 허락하며 여비를 보태줬다. 손 씨는 “가수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 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관련된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팬클럽은 취미생활을 하는 동시에 나이가 들어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는 기회가 됐다. 회원들끼리는 정기모임 외에도 별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남을 갖는다.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할 뿐만 아니라 쉽게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는지 등 일상적인 수다뿐만 아니라 속 깊은 얘기를 터놓는 사이가 됐다. 김 씨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에 연대 보증을 잘못 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당시 남진의 노래가 큰 위로가 됐다”며 “남진에 대한 애정을 얘기하다 보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가수의 팬으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종종 부정적인 시선을 경험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콘서트를 찾아다니면 “시간이 남아도나” “나이 들어 주책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때문이다. 회원들은 “그런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 씨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포츠 선수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수를 좋아하는 것”이라며 “팬클럽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남진이 무대에 서는 한 계속 팬클럽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공통된 바람을 얘기했다.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남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자체가 이들에겐 행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남진은 110세까지만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며 남진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오 씨는 “취미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팬미팅, 정기모임, 행사를 기획하는 활동들이 활력을 느끼게 한다”며 “앞으로도 이런 활동들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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