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前 駐유엔 대사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사흘 앞두고 개최국인 우리는 올림픽보다 온통 북한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려 있다. 2000년대 들어 우리가 개최하고 북한이 참가한 모두 네 차례의 국제 스포츠대회 사례를 보더라도 이렇게 온 나라가 북한의 참가에 들뜬 관심을 보이는 건 특별한 현상이다. 그만큼 북의 핵·미사일 개발 및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고 평창올림픽 이후의 상황 전개에 대한 기대와 경고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강한 대북 제재의 약한 고리인 한국과의 물밑 작업을 통해 남북 경협의 단초를 만들면서 미국의 압박과 무력사용 가능성을 무실화하려는 돌파구 겸 방패막이로서 평창을 이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을 남북 관계 개선의 시발점 및 미·북 간 대화 유도를 위한 교량 역할로 활용하려 하면서 잘만 하면 ‘운전석’에 앉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과 한국에서의 일정을 보면 한·미 공조를 중시하되, 북한의 저의를 꿰뚫어보면서 한국의 과속 질주와 독자 행동을 걱정스레 감시하고 있는 듯하다. 가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북한은 명목상 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대표로 보내고, 만경봉 92호로 북한 예술단을 싣고 오겠다고 한다. ‘힘’이라곤 없는 90세의 노인이 와서 전해줄 메시지가 그리 경천동지할 흥미를 유발할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만경봉 92호의 경우는 결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140명이 넘는 예술단을 통제하고 대남 노출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이겠고, 따라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정부는 5·24 대북 제재의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예외(例外)가 일 회로 그치면 말뜻 그대로 예외에 머물겠지만, 문제는 예외가 선례가 되면서 또 다른 예외로 이어지게 돼 우리 스스로 세운 원칙을 허물고, 이제 막 뜸이 들기 시작하는 제재라는 압력밥솥의 김을 우리가 앞장서서 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때의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배려로 연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했던 우리로서 2·8 평양 열병식에 대해 문제 제기와 연기 요구는커녕, 그 열병식에 대해 북한에 앞서 친절한(?) 해석과 설명을 마다 않는 정부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동맹 미국과 우방 일본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다.

패럴림픽을 제외한 평창올림픽은 오는 25일이면 끝난다. 한국인의 저력은 인류의 제전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자신감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은 포스트 평창의 안보 상황이다. 올림픽 종료 후 한·미 간 군사훈련은 어김없이 시작될 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실험 발사와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 반대인 핵 포기와 미·북 간 대화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대화의 불씨는 우리의 희망 섞인 호의적 태도와 북한의 호전적·기만적 태도로는 지켜나갈 수 없다.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우리의 비핵화 원칙 우선주의와 안보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에 기반해야 한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빼 쓰기 어렵다. 조선조 숙종 때 알려진 속담이다. 안보라는 우리의 칼은 항상 우리가 벼리고 우리 칼집에 넣어 둬야 한다. 그래야 미구에 닥칠 어떤 상황에도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칼은 어느 누구의 칼집에 들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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