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환호와 낙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하다. 재판부에 대한 욕설과 신상털기, 나아가 ‘위협’ 수준에 이르면 심각한 범죄행위가 된다. 법리(法理)와 증거에 따른 독립적인 판결을 방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주의 수호의 책임까지 위임받은 집권 세력이, 그런 ‘사법 공격’을 막아내긴커녕 앞장선다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허무는 중대 사태다.

지금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고법 형사13부의 정형식 재판장에 대한 공격에 여당 지도부까지 가세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사법부가 재벌에 굴복한 판·경(判經) 유착” 운운하며 맹비난했다. 심지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모종의 조치를 시사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6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유승희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것은 사법 정의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적폐 청산이 덜 돼서 생긴 문제’ 등 극단적인 말도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한명숙 전 총리가 출소했을 때 ‘억울한 옥살이’라고 했다. 집권 세력의 이런 행태는 사법부를 향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코드 판결’을 하라는 강요나 다름없다. 상고심 판결에 대한 부당한 압력도 된다.

정 재판장은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석방 여부”라고 했다. 여론이나 정치·경제 권력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법 상식에도 부합한다. 이처럼 ‘오직 법리와 증거’를 추구하는 역량 있는 판사들이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도 청와대도 그런 의지를 비치지 않으니 대한민국 법치를 어디로 끌고갈지 가늠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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