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정치이념의 격전지가 되면서 멍이 들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색 짙은 사건의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사법부 내부에 깊이 드리워진 이념성향의 밑바닥 일부가 드러나곤 했었기 때문이다. ‘재판은 정치’라고 주장한 판사가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을 한 동료 법관을 향해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라느니, 전 정권 인사들을 구속적부심으로 풀어준 동료 법관의 결정에 대해 ‘이런 식으로 재판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등의 비난을 퍼부은 판사도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깊은 우려를 금할 길 없다.
특히, 법관은 재판으로만 말한다는 법률가 중의 법률가가 아닌가. 미국 대법원의 판사들은 서로를 ‘형제’라는 말로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서구 여러 나라의 명예법정은 대학인들과 법률가 신분에 속한 이들의 특수한 사명감과 그에 걸맞은 품위에 맞춰 성립되고 발전돼 온 전통이 있다. 이들은 진실과 정의의 추구에 온 인격을 걸고 소명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존경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그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인 경의의 표현을 명예법정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광풍처럼 밀어닥친 적폐청산은 다분히 좌파 이념적인 정권의 야심 찬 20년 장기집권 프로젝트의 기반 다지기 성격이 짙어 보인다. 그 기세가 어느덧 검찰을 밟고 넘어서 이제 사법부를 향해 소용돌이치고 있는 판세다.
이 시대 사법부 독립을 뒤흔드는 가장 큰 요인은 독재정권 시기의 정치적 외압 같은 유가 아니라, 신성해야 할 사법이 부패와 정치이념의 장으로 화하는 데 있다. 우선, 이념 지향에 따라 제 세상 만난 듯 놀아나는 일부 코드 판사들의 과도한 권력 의지다. ‘재판은 정치’라고 생각하는 법관이 아직도 사법부에 남아 재판에 관여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저부터 갉아먹는, 부패한 누룩이 여전히 안존한다는 징표일 것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항소심 재판장에게 명예살인에 가까운 망언(妄言)을 퍼부어대는 여권의 개념 없는 몇몇 정치인들이나 청와대 청원창구를 달구는 통속적인 시민들의 아우성도 실은 사법의 독립과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악의적인 폭력에 속한다.
물론 재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소를 수행한 특검이나 검찰까지 나서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대놓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의도가 넉넉히 짐작되거니와 실망을 넘어 측은해 보인다.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상고 이유로 다투든지, 제대로 품격을 갖춘 판례평석을 통해 비판할 지혜와 마음의 여유조차 없단 말인가. 법률가들이 솔선해 사법적 정의를 추구하며 제 위치에서 정도를 따라 최선을 다할 때, 진실로 ‘국민의 사법’이라는 공공의 이익 실현에 기여할 터이다. 사법(司法)을 정치혁명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생각에 재판이 휘둘린다면 말이 사법이지, 실은 중국 문화혁명기의 재판 아류에도 못 미칠 것이다.
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사법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서고, 국민생활의 질서가 바로잡힌다고 말하곤 했다. 국민이 사법을 믿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돈 주고 폭력을 살지언정 법에 호소하는 일이 있겠는가.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바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이다. 그 누구도 사법을 욕되게 할 망언을 농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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