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NGO 관련 기사를 써온 영국 저널리스트 마리나 칸타쿠지노는 2003년 지극히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폭력, 비극, 불의를 경험했지만 보복과 복수 대신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모으는 작업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분쟁과 갈등 속에서 새로운 출구와 방향을 모색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은 컬렉션에 사진 작가 브라이언 무디의 사진들을 더해 2004년 런던에서 ‘The F Word’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가 성공을 거두자 그는 ‘용서 프로젝트(The Forgiveness Project)’라는 비영리 자선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용서가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한 방법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뒤 ‘용서 프로젝트’는 범죄자들을 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도 진행하기 시작했고, 그 공으로 롱퍼드 상(Longford Prize) 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부키)는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 용서 경험을 공유한 46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아들을 죽인 소년을 용서한 엄마, 10대에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들을 용서한 50대 여성,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 간 자살 폭탄 테러범을 만난 아들, 엄마를 죽인 아빠를 용서한 딸 그리고 범죄와 폭력에서 벗어나 속죄의 삶을 선택한 한 여성….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용서를 결심한 걸까? 그들이 겪은 사건을 짤막하게 요약하고, 이들이 어떻게 용서에 이르게 됐는지를 들려주는 3, 4페이지의 글에는 고통이 가득합니다.

용서는 오랫동안 종교적 차원에서 이야기돼 왔지만 최근 다양한 성찰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는 최근작 ‘용서에 대하여’(동녘)에서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철학적 차원에서 예리하게 탐색했습니다. 특히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뉘우치거나 회개해야만 비로소 용서가 가능한가’라는 ‘용서의 전제’ 문제를 깊게 파고 듭니다. 독일의 법학자이자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과거의 죄’(시공사)에서 ‘홀로코스트’라는 국가의 죄를 중심으로 용서를 국가와 사회 역사적 차원에서 다룹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매우 개인적 차원의 용서입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용서에 이르렀지만 용서의 색깔, 차원은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치유이고, 누군가에겐 성숙이며, 누군가에겐 신에게 닿는 순간입니다. 용서보다는 아픔과 고통으로 포기해 버린 자기 삶을, 자기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합니다. 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그 고통과 대면해 평범한 일상에 다시 안착하게 됐는지에 대한 아픈 기록입니다. 308쪽, 1만3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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