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12일 희생자들의 사진과 사연이 적힌 추모 게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12일 희생자들의 사진과 사연이 적힌 추모 게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문화일보 취재진은 최근 스포츠센터와 병원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와 경남 밀양시를 찾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겨우 한두 달 남짓 흘렀지만, 시내 곳곳에 내걸렸던 애도 현수막은 대부분 철거됐다. 전통시장은 명절 준비로 한창 바빠지는 등 제천과 밀양은 피해자 유족들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미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오직 유족들의 슬픔만이 현재 진행형이었다. 유족들은 하나같이 “명절이 다가오니까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제천의 눈물

친정 갈때마다 반기던 어머니
봉사활동 뒤 목욕탕 찾았다가…
현장서 수거된 고인 가방 속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백설기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
가족 사랑 듬뿍 받을 설인데…


류현정(여·31) 씨는 2014년 결혼한 이후 매년 대한민국 여느 며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명절을 보냈다. 시댁에서 먼저 시간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친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친정에 가면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들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보드게임을 한 뒤엔 꼭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류 씨의 이번 설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류 씨는 이제 명절 때마다 딸을 반겨주던 어머니 이항자 씨의 모습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 한쪽 벽면에는 류 씨가 지난해 명절 때 친정에서 찍었던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다. 류 씨는 자기 옆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어머니를 볼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이항자 씨는 지난해 12월 21일 불우이웃을 위한 ‘반찬 만들기 봉사활동’을 한 뒤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오후 1시 30분쯤 목욕탕을 찾았다가 화마(火魔)에 휩쓸렸다. 참사 현장에서 수거된 이 씨의 가방에서 백설기 두 덩이가 발견되자 남편은 “아내가 떡을 좋아하는 나에게 주려고 챙긴 것”이라며 오열했다. 류 씨는 “이번 설에는 어머니의 빈자리로 외로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시댁이 아니라 친정부터 들를 것”이라고 말했다. 류 씨는 외동딸이다.

지난해 고3 수험생이었던 김다애 양에게 명절은 사치였다. 큰집에 잠깐 들르는 것 외에 명절 대부분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냈다. 김 양의 부모는 고달픈 수험생활을 끝내고 처음 맞는 명절에 딸과 함께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마침 김 양이 수시전형에서 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과 우수장학생으로 합격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차린 김 양의 아버지에게 딸의 대학 합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김 양의 할아버지도 이번 설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애(多愛)라는 이름은 ‘많이 사랑받고 자라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 준 것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이 가족여행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제천 화재는 대학 입학을 앞둔 김 양의 목숨을 앗아갔다. 분향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김 양의 어머니(43)는 “누구보다 착하고 속 깊은 딸이었다”며 “올해 설은 다애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명절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한편 제천시민들에게 명절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분향소에서 1㎞ 남짓 거리에 있는 내토전통시장은 설 1주일 전부터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제수품을 파는 상인과 물건을 사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등 여느 명절 전통시장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제천 =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 밀양의 아픔

퇴원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 정리도 못한채 설 맞아
유달리 잡채를 좋아하셨는데
이제는 차례상에 올릴수밖에

희생자 보상문제 등 막막해도
적막하던 시내는 점차 ‘활기’


설연휴를 앞두고 다시 찾은 밀양은 참사의 아픔을 딛고 조금씩 일어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명절이 다가올수록 유족의 아픔은 더 커져 가고 있었다.

화재 참사 보름 만에 찾아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현장은 192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비극의 현장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조용했다. 새까맣게 타버린 병원 응급실 앞을 지키고 선 경찰관 서너 명만이 화재 참사 책임을 놓고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임을 보여줬다.

경찰은 지난 10일 세종병원 이사장과 총무과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희생자 유족들이 참사 뒤 맞는 첫 명절은 쓸쓸하기만 하다. 지난달 26일 참사 당시 퇴원을 앞두고 갑자기 번진 불길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이모(여·55) 씨는 “아직 어머니의 유품을 다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명절을 맞으니 먹먹하다”면서 “어머니께서 잡채를 유달리 좋아하셔서 설이면 꼭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잡채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는 차례상으로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화재로 집에서 14년 넘게 모셔온 아흔 살 장모를 잃은 김성환(61) 씨 역시 “설이 다가오니 살아생전 잘 못 해드렸던 것만 생각나 괴롭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좀 더 곁에 오래 있어 드릴걸, 좀 더 따뜻하게 말씀드릴걸 하는 후회로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이번 설에는 선산에 모신 장모님을 찾아뵐 생각”이라고 말했다. 밀양 참사 희생자의 절반 이상은 여든이 넘는 노인이었다. 화마는 설을 맞아 각지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가 버렸다.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한 유족은 “사상자 수가 워낙 많아 피해 보상금 규모가 커져 합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경남도청과 병원 이사회가 협의 중이었지만 이사장이 구속되는 바람에 그마저도 어렵게 돼 답답하다”고 말했다.

밀양문화체육회관에 차려졌던 합동분향소는 이미 문을 닫았다. 밀양시청은 지난 3일 오후 합동분향소 운영을 종료했다. 한때 지역과 전국에서 찾아온 추모객으로 붐볐던 체육관은 문이 잠긴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바로 옆 텅 비어버린 유족협의회 사무실에는 이미 다른 용도의 물건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밀양시청 관계자는 “조만간 유족협의회 사무실도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애도 기간 내내 적막했던 시내 중심가는 설 연휴를 앞두고 점차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였다. 밀양 전통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박모(67) 씨는 “아직도 밀양에서 그런 큰일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이제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다시 고향을 활기차게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밀양 =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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