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파워’ 유지못하는 탓
美 관세율 올라 수출 막히자
‘이익’포기하고 ‘시장’찾는것
“주요 기업들 對美 투자 규모
향후 5년간 20조원 달할 듯”
국내 대기업 A사는 자사 베트남 공장 임금(평균 500달러·약 54만800원)의 5~8배(평균 3000~4000달러)에 달하는 미국에 공장을 지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5명을 고용할 돈으로 1명을 고용한 셈으로, 영업이익은 줄 수밖에 없다. 이를 감수하고도 A사가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을 놓치고는 ‘브랜드 파워’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미국 공장을 짓고 있는 동종업계 B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미국에서 장사하고 싶은 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식의 정책을 펴자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가전업계 한 임원은 14일 “솔직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보호받는 월풀이 부러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숱한 논란이 있지만 ‘기업이 일자리이자 국부(國富)’라는 기조만큼은 확실하다”고 했다.
원유, 천연가스 채취에 사용되는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중견 철강업체 넥스틸은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길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가 1년 만에 관세율을 8%에서 46%로 올리면서 지난해 9월부터 대미수출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결국 연간 100억 원(2016년 기준)을 버는 이 회사는 300억 원을 들여 미국 휴스턴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저융점 폴리에스터 단섬유(LMF)를 만드는 화학업체 휴비스도 최근 태국 기업과 합작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국이 인건비가 높고 초기투자 비용이 있지만, 미국시장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를 고려해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업체는 미국의 반덤핑 조사 예비판정 결과 ‘0%’의 관세율을 받았다.
미국이 세계의 돈과 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데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높은 보호무역 장벽으로 압박을 가한 이유도 있지만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 이유도 있다.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해 단기간의 ‘이익’을 포기하고 ‘시장’을 좇아 떠나는 한국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반기 기준으로 평균 20억~30억 달러 수준이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지난해 3분기까지 131억100만 달러로, 2016년 전체 투자액보다 많았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의 향후 5년간 대미 투자 규모는 20조 원(약 173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 등 유인책들은 실제로 외국기업들의 영업이익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사상 최대 이익이 예상되는 토요타자동차는 미국 정부의 법인세 감면 효과로만 3000억 엔(약 2조9811억 원) 가까운 순이익 증대 효과를 보게 됐다.
지난 1일 열린 한국경제학회 세미나에서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올해 미국과 법인세율이 역전되면서 일어날 새로운 기업 엑소더스(대탈출)의 주체는 저효율 중소기업이 아니라 고효율·고기술 대기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미국의 통상압박 이후 정부가 시장 다변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사정을 잘 모르는 얘기”라면서 “미국과 중국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방승배·권도경 기자 bs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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