匠人에게 듣는 ‘유래와 변천’

우리나라의 설날 음식 중 가장 특징적인 음식은 떡국이다. 지금은 손쉽게 먹을 수 있지만, 옛날 서민들은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였다.

가래떡이란 떡을 길게 늘여서 뽑아냈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지금은 방앗간에서 길게 뽑아내지만, 원래는 쌀로 밥을 해서 그것을 떡메로 친 다음 다시 그 반죽을 둥글고 길게 밀어서 형태를 완성했다. 옛날에는 유행병이 퍼지면 마땅한 약이 없어 치료하기가 쉽지 않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못 먹어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이 최고의 ‘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래떡과 국수는 장수를 상징했다.

요즘에는 삼색 떡국, 오색 떡국 등 다양한 색의 떡국 떡을 만들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가래떡에 색을 넣지 않고 그대로 하얗게 만들었다.

떡은 쌀로 만드는 음식이므로 식량이 귀하던 조선시대에는 잔치나 명절이 되어야 먹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정갈한 흰색을 통해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데, 백지처럼 순수하고 비어 있음을 뜻하기도 하는 것으로 그 하얀 공백을 1년 동안 채워 나간다는 의미다.

가래떡을 뽑을 때 길게 뽑는 것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제일 크다. 또한 길고 두툼한 가래떡이 그 시대의 엽전 꾸러미와 비슷한 형태를 이루어 재물과 재산이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요즘은 모양을 내기 위해 어슷하게 썰고 있지만, 옛날에는 떡국 떡을 동그란 모양으로 썰었다. 가래떡을 둥근 모양 그대로 썰어 떡국 떡을 만드는 것은 그 모양이 마치 옛날 화폐인 엽전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쌀로 만든 떡국은 일반인들이 방앗간에 가서 돈을 주고 만들어서 먹었다. 시중의 떡집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도 쌀로만 가공된 떡은 구매하기 힘들었다. 밀가루와 전분을 주재료로 쌀은 10% 정도만 넣고 만들었다. 쌀이 없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에 떡국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에서 통일벼 다수확품종을 장려하며 쌀이 과잉 생산돼 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6년 쌀 수백만t이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수습책으로 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들던 떡과 떡볶이를 쌀로 대체하도록 쌀을 밀가루 가격으로 방출했다. 그 이후로 쌀 가공 떡 기계가 개발되며 떡 가공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슈퍼에서 쌀로 만든 떡을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주정을 사용한 살균법과 침지법이 개발되며 방부제 없이도 떡을 3∼5개월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그 같은 발전에 힘입어 떡국 역시 K-푸드의 열풍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회사만 해도 연간 60억 원 이상의 떡국과 떡볶이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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