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영 전문위원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 알펜시아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손가락 하트’로 후배들인 한국 선수단을 응원했다.
‘한국스키의 선구자’ 강찬영 크로스컨트리 전문위원
아홉살 때 스키와 인연 맺어 육군스키부대 입대, 훈련받아
“오륜기 기수 선정 소식 듣고 장난인 줄 알고 처음엔 거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 알펜시아크로스컨트리센터. 강찬영(68) 크로스컨트리스키 전문위원의 근무지다. 전문위원은 해당 종목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60년 가까이 스키인으로 살아온 강 전문위원에게 딱 알맞은 직책. 강 전문위원은 한국 스키의 산증인이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국가대표를 조련했다. 그리고 한국 동계스포츠에 큰 족적을 남긴 공로자로서 지난 9일 열린 개회식에서 올림픽기를 들고 평창 올림픽플라자 내 올림픽스타디움에 들어서는 영광을 안았다.
13일 알펜시아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만난 강 전문위원은 “올림픽기를 들고 개회식에 참가한 뒤 전국의 수많은 제자로부터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을 뵈어서 좋습니다’라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수없이 받았다”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 전문위원은 두 달 전 개회식 올림픽기 기수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거절했다. 그는 “개회식 올림픽기 기수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라며 “장난인 줄 알고 처음엔 거절했다”고 웃었다. 강 전문위원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나 고배를 마셔 오랫동안 마음을 졸였다”면서 “직접 올림픽 무대에서 봉사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강 전문위원에겐 ‘한국 스키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평생을 스키 지도자로, 체육 교사로 스키 보급과 후진 양성에 힘써 왔기 때문. 김우성 스키대표팀 코치, 스노보드 김상겸(전남스키협회),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이채원(평창군청) 등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 멤버도 그의 손을 거쳤다. 강 전문위원은 “올림픽에 참가한 제자가 20명 정도 된다”면서 “이제는 후원회를 조직해 후진 양성에 더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릉이 고향인 강 전문위원은 9세이던 1959년 처음 스키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경희대 스키부 소속이었던 형(강찬금 전 단국대 체육대학장)으로부터 “대관령 스키장으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강 전문위원은 “당시엔 어린이용 스키가 없어 형님이 스키 타는 모습을 지켜봤고, 형의 스키를 몰래 훔쳐 타다 스키를 부러트려 혼이 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강 전문위원은 1965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기계체조 강원도 대표로 출전해 3위에 올랐다. 그리고 럭비와 축구, 스키선수로도 활약했다. 강 전문위원은 “제1공수특전여단의 육군스키부대에 입대했다”며 “당시 스키부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 황영조를 키워낸 정봉수(작고) 전 감독이었고, 정 전 감독으로부터 체력 훈련과 지도법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강 전문위원은 강원대를 졸업한 뒤 1977년 체육 교사가 됐다. 당시 국내엔 스키 지도자가 많지 않았고, 체육 교사였던 강 전문위원은 코치 역할을 병행했다. 레이크플래시드동계올림픽엔 자비로 ‘출장’을 떠났다. 대표팀 코치를 1명밖에 보낼 수 없어 강 전문위원은 YMCA봉사단 자격으로 출전했다. 당시 자비로 비행기 티켓(200만 원)을 구해 현지로 날아가 크로스컨트리스키 경기장에서 국가대표팀을 독려했다. 그는 1984 사라예보동계올림픽과 1986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1988 캘거리동계올림픽 등에서도 전문 코치로 참가했다.
강 전문위원은 “예전엔 크로스컨트리 스키장이 국내에 한 곳도 없어 눈이 많이 오는 곳을 30㎞ 정도 선수들이 직접 밟아 다지고, 깃발을 꽂아 코스로 삼았다”면서 “잔디구장을 밟아 보지 못하고 월드컵에 나가는 격이었다”고 말했다.
강 전문위원은 또 초등학생 꿈나무를 키우고 교내 스키부를 구성, 유망주를 육성했다. 교사 월급을 털어 합숙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넓고 시원한 코스가 부러웠는데, 평창에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들어서게 됐다”며 “평창동계올림픽은 그 자체가 기적이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