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訪北) 제안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수락 의사를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남북 정상회담이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이해, 이용 가능한 정보 확보, 잠재적인 편익과 비용에 대한 냉정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1차(2000년 6월)와 2차(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와 완전히 딴판이다.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북핵(北核) 능력 제거를 위해 군사적 옵션도 고려하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새로운 강력한 제재가 곧 나올 것이며,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최대한의 압박은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조건 없는 북·미 대화는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연말 만장일치로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 제2397호를 채택했다. 원유·정제유 유입 제한, 해외 북한 노동자 2년 내 귀국, 북한 식품·농산물·광물·기계·전기장치 수출 금지, 북한 선박 해상 차단 강화 등이 포함됐다.

남북 정상회담이 가시화하자 남남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환영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이적행위가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올 상반기 중에 회담이 성사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이 진행중이고, 우리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변수가 있으며, 남남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섣불리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성과를 담보할 수 없는 ‘사상누각’을 짓는 일이다.

가장 큰 위험은, 한국은 소외된 채 주변 강대국끼리만 북한 비핵화 논의를 진행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강력한 대북 제재로 위기에 몰리자 이를 극복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어떠한 정상회담도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 넘어가 북핵 완성 시간만 벌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 앞에 놓인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북핵 폐기를 조건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북핵 폐기와 남북 회담을 동시에 진행하는 여건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제한된 정보를 갖고 확신에 차서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방한 후 귀환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발언에 너무 감성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정부는 한·미 동맹의 균열 속에서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지 말고 길게 호흡할 필요가 있다. ‘회담을 위한 회담이 목표일 수는 없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준수하고, 북한에 특사를 보내기보다는 미·일에 특사를 보내 신뢰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야당 대표들과 만나 이번 북한 대표단과의 회동 내용과 관련, 중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안보 협치(協治)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초당적 협조 속에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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