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은메달이 확정된 ‘빙속 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에게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32·일본)가 다가와 서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던 이상화도 “계속 존경한다”고 화답했다.
이상화는 37초 33으로 올림픽신기록을 세운 고다이라(36초 94)에게 0.39초 뒤졌다. 레이스가 모두 끝난 뒤 이상화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대회에 함께 참가했을 때 고다이라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네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내가 은메달을 가져가겠다’고 말을 걸었다”며 “그때 내가 ‘아니 네가 금메달, 내가 은메달’이라고 대답했는데 진짜로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경기 전까지 팽팽하게 맞섰다. 이상화는 고다이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항상 “그 선수는…”이라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고다이라가) 갑자기 등장한 선수도 아니고, 내가 열심히 할 테니 그만 비교해 달라”고 주문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와) 좋은 경쟁을 펼치고 싶다”고 명승부를 예고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엔 서로를 품에 안았다. 이상화는 고다이라의 이름인 ‘나오’를 입에 담으면서 친근감을 드러냈다. 이상화는 “주니어 시절부터 항상 가까이 해왔던 선수이고,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과 소치동계올림픽 때도 옆에 있던 나오가 (금메달 획득을) 축하해줬다”고 귀띔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에 대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빙판 위에선 냉정한 승부를 연출했지만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서로를 챙겨주며 도왔다. 고다이라는 “2014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이후 급히 네덜란드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화가 직접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대신 내줬다”며 “당시 내가 1위를 차지해 이상화의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소개했다. 둘은 서로를 한국과 일본으로 초대하고, 좋아하는 먹거리를 택배로 부쳐주며 우정을 쌓아왔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존경심을 표현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쏠렸을 부담감을 잘 알고 있다”며 “이상화는 이를 이겨내고 멋지게 질주했다”고 말했다. 이상화도 “나는 500m에 집중하기 위해 1000m 출전도 포기했는데 나오는 1000m와 500m, 그리고 1500m까지 출전했다”며 고다이라의 투지를 칭찬했다.
오랫동안 절친으로 지내왔지만 스타일과 훈련방식은 확연하게 다르다. 이상화가 혹독한 체력훈련과 기본기로 다져진 ‘정통파’라면, 고다이라는 동양 무술에서 얻은 영감을 스케이팅에 접목한 ‘퓨전형’이다. 이상화가 국내 훈련을 통해 세계를 주름잡았던 반면 고다이라는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네덜란드로 자비 유학을 떠나 기량을 끌어올렸다. 이상화는 고교 시절 참가했던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500m에서 5위를 차지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고 밴쿠버동계올림픽과 소치동계올림픽에선 2연패를 달성했다. 반면 고다이라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주목받기 시작한 ‘대기만성형’. 중학생 시절부터 주니어 무대에서 만나왔지만 2015∼2016시즌까지는 이상화가 고다이라에게 앞서왔다.
그러나 이상화는 2016∼2017시즌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고, 고다이라는 급부상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상화는 “네덜란드에 다녀온 이후 나오가 많이 좋아졌고, 나도 그 덕에 여기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됐다”며 “라이벌로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의 ‘동행’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고다이라는 한국어로 “몰라요”라고 대답해 폭소를 유도했다. 그러나 이상화는 “작년엔가 이 질문을 나오에게 했었는데, 당시에 ‘네가 나가면 나도 나간다’고 했다”면서 “당분간은 빙판에서 조금 더 활동할 것 같다”고 밝혔다.
강릉=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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