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이 18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5∼8위 순위결정전을 마치고 관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이 18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5∼8위 순위결정전을 마치고 관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간판 골리 신소정

“꿈같은 시간, 아쉽지만 행복
열렬 응원속에서 경기 처음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20실점 안 넘기려했는데…

체력 될 때까지 계속 운동
캐나다팀에 드래프트 신청”


“순간순간이 감격스러웠어요. 관중의 열렬한 응원 소리를 들으며 경기한 건 처음이거든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간판 골리 신소정(28)은 2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마지막 7∼8위 순위결정전을 마치고 한동안 링크를 떠나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달려온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듯 천장을 응시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는 세라 머리(캐나다) 감독, 박철호 북측 감독 등과 포옹한 뒤에야 링크를 빠져나갔다. 마지막 경기를 끝낸 신소정은 마음을 추스른 뒤 “꿈 같은 시간이었고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며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해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밝혔다.

단일팀은 평창동계올림픽 예선 3게임과 순위결정전 2게임 등 5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하지만 신소정에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239개의 퍽 중 211개를 막아내는 ‘신기’를 펼쳤기 때문. 신소정에게 239개, 211개라는 숫자를 전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진짜냐?”고 되물었다. 신소정은 “하지만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실점한 아쉬움이 더 크다. (실점) 20개를 넘기지 않으려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이스하키 골리는 중무장으로 몸을 보호하지만, 최고 시속 180㎞로 날아오는 퍽을 온몸으로 막아내다 보면 멍투성이가 된다. 신소정은 진통제를 맞으며 버텨왔다. 신소정은 “하루 쉬고 다시 경기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로가 쌓였고,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다”며 “올림픽을 앞두고 치른 연습경기에서 상대 선수가 내 허리를 깔고 앉은 뒤부터 허리 통증이 심해졌지만, 경기에 나서면 아픔을 잊고 퍽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됐다. 신소정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 팀워크가 걱정됐지만, 최대한 잘하려고 마음을 모았다”며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한반도기를 유니폼에 새기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북측 선수들과) ‘남자친구 있냐?’는 등 또래 친구들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며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다 보니 정이 들었고 폐회식(25일) 후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 슬퍼진다”고 밝혔다.

신소정은 여자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되길 바란다는 마음도 전했다. 신소정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아이스하키에 입문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진다면 한국 아이스하키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며 “아이스하키로 눈길을 돌리게 하기 위해 아파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스하키클럽인 과천위니아에서 운동을 시작한 신소정은 중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고, 이후 대표팀 골문을 지켜왔다.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여자아이스하키리그(NWHL)에 진출, 뉴욕 리베터스의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신소정은 “힘든 순간이 많았기에 지나온 과정은 모두 소중하다”며 “돈 한 푼 못 받고, 그저 아이스하키가 좋아 운동한 선배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신소정은 은퇴 소동에 휘말렸다. 워낙 많은 취재진으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다 보니 ‘소통’에 작은 문제가 생겼던 것. 신소정은 “체력이 될 때까지 오래 운동을 하고 싶지만,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모든 경우를 열어놓는다는 뜻을 말했을 뿐”이라며 “은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여러 기자에게) ‘아이스하키 선수의 연봉이 너무 적기에 마음 놓고 운동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는데,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소정은 “리베터스에서 내년 시즌에도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방 월세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연봉이 적어 리베터스에 갈 순 없다”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캐나다 팀들과 접촉하고, 드래프트도 신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소정의 부친은 그가 고 3학년이던 해 그의 곁을 떠났고 어머니가 그를 뒷바라지했다. 신소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엄마가 가장이었다”며 “혼자 외롭게 지내신 엄마께 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오랫동안 해외에 머무느라 효도하지 못했다”면서 “인기 종목 선수였으면 돈이라도 벌어드렸을 텐데 (엄마로부터) 계속 받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신소정은 마스크 뒤에 아버지의 사진을 담았고 ‘올 웨이즈 비 위드 미(Always be with me·항상 제 곁에 계세요)’라는 글을 적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특정 인물을 마스크에 새기는 걸 금지하기에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아버지의 사진을 가렸다. 신소정은 “많이 속상했다”며 “가려졌지만, 내가 치른 모든 경기에 아버지가 함께 해주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큰 관문을 넘었다. 이젠 잠시나마 ‘자유’를 느낄 때. 신소정은 “지난 7년간 좋아하는 햄버거를 못 먹었는데, 오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엄마와 함께 먹었다”며 “이제부터 며칠간 잠을 푹 자고, 마음 편히 쉰 뒤에 링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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