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 ‘문화철도 959’
지상역 2층 대합실 오르면
증기기관차 모형의 ‘플랫폼’
볼풀 등 어린이 놀이 공간
3층 문화교실선 취미활동도
지하역엔 예술공간 ‘고리’
무용·연주·공연·전시·공예
홈피서 예약하면 대관 가능
생활예술프로그램 제작·지원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은 회사 업무 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과 적당한 업무 시간이 보장되는 곳이라고 한다. 취업 포털 ‘사람인’의 조사에 의하면 높은 연봉보다는 야근의 조건이 직장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체의 목표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들이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다 소진해서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을 한 번쯤은 느껴 봤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번 아웃(burn out)이라고 하는데, 이때 받는 상실감은 업무 능력을 떨어트림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삶 자체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은 퇴근 후 노래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아직 한 번도 그 직원의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업무 중에 무심코 흥얼거리는 모습은 꽤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퇴근 시간에 강남에 있는 노래학원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몸도 못 가누는 경험을 매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집으로 빨리 가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붐비는 지하철역에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있으니 바로 신도림역의 복합문화 공간 ‘문화철도 959’와 ‘고리’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은 하루에 50만 명 이상이 몰려 ‘헬도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혼잡한 역사다.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다니는 혼잡한 역사 안에 문화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좀 의외다. 신도림역은 1호선 지상역과 2호선 지하역으로 돼 있다. 지하역은 인근의 대규모 상점과 업무시설로 연결돼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반면 지상역은 지하역에 비해 편의성이 떨어져 사람들의 사용 빈도가 현저하게 낮은 곳이다. 그렇다 보니 남는 공간이 발생했고 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 ‘문화철도 959’다. 여기서 ‘959’는 ‘구로구’ 발음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지상역 2층 대합실에 가면 오래된 증기기관차 모형으로 멋을 낸 ‘키즈 플랫폼’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아이들과 보호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이곳에선 작은 기차를 타거나 볼풀을 이용한 놀이 공간을 즐길 수 있으며 그림책을 위주로 한 작은 도서관도 마련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북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3층에 마련된 문화교실에서 사진 촬영, 캘리그라피, 하모니카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 3층에는 문화교실 외에도 객차 모양을 한 작가들의 창작 공간이 있어, 한적한 역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역사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조용한 분위기가 장점인 ‘문화철도 959’와는 달리 지하역에 있는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는 테크노마트,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를 연결하는 가장 혼잡한 지하역 3번 출구에 있다. 이곳은 생활문화를 즐기려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무용, 악기 연주, 공연, 전시, 회화, 공예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공간 이용은 대관으로 가능한데, 대관은 누구나 ‘고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연주나 무용에 필요한 공간 환경을 잘 갖추고 있어 사용하기 편하다. 동료들과 합주를 위한 연습 공간이 필요할 때, 동아리에서 작은 전시를 위한 공간이 필요할 때, 비교적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유 공간이다. 공간을 대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는 생활예술 프로그램 제작과 지원도 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대중 노출도가 높다는 점이다. 지하역 사거리의 개폐 가능한 유리벽은 시민 예술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발표 공간이 된다.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와 ‘문화철도 959’가 있는 신도림역은 탄생부터가 흥미롭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을 연결하는 환승역이 필요해 기존에 있던 영등포역과 구로역을 고려하다가 부지 확보를 못 해 예정에 없던 이곳에 새로운 역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 역보다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중요한 역이 됐지만 탄생의 비밀은 순탄치 않았다.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와 ‘문화철도 959’ 역시 화려한 문화공간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바쁜 시민들에게 가까운 거리에서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생활문화 공간의 가장 큰 덕목은 시민의 동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하철역에 있는 이 두 공간은 생활문화 공간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셈이다. 올해부터는 이 두 문화공간이 연계해 더 풍성한 문화 활동을 펼친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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