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그냥 계속 걷는 겁니다.”(‘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 ½년을 살았다’ 36페이지)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 ½년을 살았다’(클)는 사진작가 마틴 오스본이 1927년 1월 1일 태어나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이스트런던을 떠난 적이 없었던 조지프 마코비치라는 남자의 일상을 담은 포토 에세이다. 2007년 우연히 마코비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모습과 생각이 사진과 글로 담겼다.

2007년 오스본은 이스트런던의 스튜디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다 마코비치를 처음 봤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엄청 큰 사이즈의 블레이즈를 벗어 어깨에 걸치고 발을 끌며 광장을 걸어가 빈둥거리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길을 잃었거나 홈리스 아니면 정신나간 이상한 사람 같았다. 잘 찍으면 공모전에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오스본은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하지만 마코비치는 그의 짐작과는 전혀 달랐다. 자기 같은 젊은 뜨내기보다 지역에 더 깊게 뿌리를 두고 있었고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20여 년 동안 가방에 리벳 박는 일을 한, 그리 대단치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정직했고, 친절했다. 런던을 떠난 것은 평생 단 한 번,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 가본 게 전부였지만 놀라울 만큼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별다를 것 없는 삶을 통해 거둔 담담한 삶의 말들이 특별하지 않고, 현란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걷는 것뿐이라는 그의 말. 마코비치라면 화내봤자, 불평해봤자, 미워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우리가 또 그저 자신의 길을 갈 뿐이라고 할 것이다. 언제쯤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답은 알 수 없고 그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처럼 그저 계속 걸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96쪽, 1만3000원.

최현미 기자 ch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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