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신청 기업 리스트 발송
“세무서라 이의제기 못하지만
공적업무 민간 떠넘겨” 반발
“국세청 지시 따른 것일 뿐”
국세청 산하 일부 세무서가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일선 민간 세무사 사무실에 신청서를 받아 보고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갑질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무서와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민간 세무사무소들은 정부가 해야 할 공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실상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26일 정부 및 세무업계에 따르면 일부 세무서가 관할 민간 세무사무소에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지원 협조 요청 안내문’(사진)을 내려보내 세무사무소 고객 기업을 대상으로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받아 달라는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조요청 공문에는 “귀하가 수임한 업체 중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대상으로 파악된 사업주 명단을 아래와 같이 안내하여 드린다”며 해당 세무사무소의 고객 리스트까지 적시해 협조를 요청했다.
민간 세무사무소들은 관할 정부 기관의 이런 요청을 ‘협조’라기보다는 사실상 ‘강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일선 세무사무소가 대상 고객 기업을 직접 설득해 자금 신청서를 받아 그 기업 리스트까지 회신해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을’의 위치에서 거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영세 사업자들의 경우 재무 여건상 세무 담당자나 부서를 두기가 어려워 민간 세무사무소에 세무·재정업무를 위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대상인 영세 사업주들 대부분이 이들 민간 세무사무소의 주요 고객이다.
더욱이 관(官) 출신이 아닌 소위 ‘세무고시’ 출신 세무사들의 경우 세무 집행 권한을 갖고 있는 국세 공무원들이 절대 ‘갑’일 수밖에 없어 세무서 요청을 거절하기가 더욱 힘들다는 게 세무업계의 중론이다. 한 세무사무소 사무장은 “우리에게 할당된 업체 수만 수십 곳”이라며 “해당 업체에 일일이 연락해 신청을 독려하는 등 그렇지 않아도 업무가 많은데, 우리에게는 세무서가 ‘갑’일 수밖에 없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세무사무소 관계자도 “세무공무원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재량으로 가산세를 조정할 수 있는 등 현실적으로 (민간 세무사무소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협조 공문이 내려오면 세무사무소는 거절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이 해야 할 공적인 업무를 민간 세무사무소에 내려보내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해당 세무서는 “관할 세무사무소에 ‘협조 요청 안내문’을 보낸 것은 맞지만, 상급기관인 지방국세청의 지시를 따른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국세청은 지난달 18일 한국세무사회에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다른 정부부처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독려 상황까지 파악하거나 제어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가능한 한 많은 영세사업주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할 수 있게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들도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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