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때 집권자는 ‘특사(特使)’ 카드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할 때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를 특사로 보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물밑 협상을 벌이는 등 성공한 사례도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2013년 김정은은 집권 이후 장성택 처형 등으로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보냈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출장을 이유로 만나주지 않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했던 경우도 있다.

특사 외교가 실패하면 예전엔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현대에는 무역·관광 등 각종 보복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특사는 주요 합의나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등 성공한 사례가 많다. 1970∼1990년대 냉전 시대에 특사는 몰래 보내는 밀사(密使) 성격이 강했다. 독약인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갔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박철언 전 장관 등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이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은 42차례나 북측과 비밀회담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당시 임동원 국가정보원장과 박지원 장관, 노무현 대통령 때는 김만복 국정원장이 나서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임 전 원장은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때 북측이 김 전 대통령이 반드시 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절하느라 애를 먹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2003년 임동원·이종석 특사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직후 방북했지만 결국 김정일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5일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이 김정은 면담을 한다면 이희호 여사에 이어 두 번째로 김정은을 직접 만나는 남측 고위인사가 된다. 비핵화 문제에 대한 김정은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고 그의 자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을 여러 차례 만난 것처럼 쉽게 특사단을 면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올빼미형인 자신의 시간에 맞춰 밤늦게 또는 특사단이 떠나기 직전 만나는 등 특사단의 애를 태울 가능성도 있다. 특사단의 당당한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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