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녀 현지예요. 제가 세 살 때 이혼한 부모님 아래에서 항상 저와 동생을 지켜주신 건 할머니셨어요. 바로 할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동생과 달리 저는 맡아줄 집이 없어서 이 집, 저 집 웬만한 친척 집을 다 떠돌아다니다 할머니께 오게 됐는데 그때부터 할머니는 저한테 엄마 그 이상의 존재셨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놀리는 “쟤 엄마 없대”라는 비수 꽂히는 말들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질 안 좋은 언니들이 꼬드길 때도, 중학교 3학년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학교 폭력을 당하던 때도 전부 할머니가 곁에 계셨기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저한테 할머니는 등불 같은 존재예요. 어두컴컴한 와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등불이요. 남들은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면 다 놀라요. 제가 안 삐뚤어지고 이렇게 잘 큰 게 용하대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 이혼, 떠돌이 생활, 눈앞에서 보고 트라우마로 남은 싸움 장면들, 학교 폭력…. 그 모든 걸 버티고 일어선 제가 용하대요.
저는 그런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제 생활에 할머니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셔서 다 버티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저는 아마 많이 망가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내일은 더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도 갖지 못했을 거라고 믿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지금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데 학교 폭력을 당하는 동안 저 진짜 죽고 싶었어요. 너무 괴로워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빌었어요. 제가 써놓은 일기장에 아직도 그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도 대견한 건, 제가 그런 죽고 싶은 날들을 견뎌냈다는 거예요. 물론 몸에 남은 흉터도 있고, 그 당시에는 가족들 마음도 너무 아프게 했지만 저는 그 시간을 버티고 지금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제가 대견해요. 제가 할머니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했던 말 기억하세요?
“할머니, 나 진짜 죽고 싶어.”
그 말에 할머니도 펑펑 우시면서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내가 진짜 죽고 싶은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속상한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멍청한 짓이더라고요. 그리고 더군다나 할머니의 삶을 바쳐가면서까지 키운 제가 할머니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진짜 배은망덕하죠. 죄송해요, 이런 손녀라서.
최근 들어 다리가 더 아프다고 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갔을 때, 보호자 자격으로 갈만한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사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한편으로 뿌듯했던 건 제가 이만큼 커서 할머니를 모시고 다닐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제가 앞으로 더 잘 모시도록 할게요.
할머니, 저는 할머니 덕에 이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살면서 내내 행복하기만 한 게 아름다운 삶은 아니잖아요. 역경을 헤쳐나간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투박하게 자랐을지도 모를 제 삶에 거름과 햇빛과 물을 아낌없이 주신 할머니께 오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도. 사랑해요. 제 할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부끄럽지 않은 손녀가 될게요. 사랑합니다.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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