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을까요?

요즘처럼 글이 넘쳐 나는 시대에 일단 많은 글 속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도 흐르는 시간을 견디며 생존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68)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원더박스)는 이에 대한 대답을 시도합니다. 그라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치다는 프랑스 현대 사상 전공자이지만 문학, 철학, 교육, 정치, 문화, 사회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글쓰기를 하는 데다, 합기도 7단에 고베(神戶)시에 무도와 철학을 위한 배움터 ‘가이후칸(凱風館)’을 열어 생활 학습 공동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삶과 생각, 글과 생각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려 하는 그가 삶과 앎,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 속에 도달한 ‘살아남는 글’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2011년 그가 대학에서 은퇴하며 가진 마지막 학기 강연을 엮은 책에서, 그는 ‘살아남는 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수십 년에 걸쳐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채 신물 날 정도로 다양한 글을 읽고 또 스스로 대량의 글을 써온 결과 나는 ‘글쓰기’의 본질이 ‘독자에 대한 경의’에 귀착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실천적으로 말해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과 표정을 동원하고 온갖 표현을 다해 시도하듯이 글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그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바로 ‘어른의 글쓰기’입니다. 그가 말하는 어른이란 ‘타인의 마음을 아는’ 사람, 타자와의 가상적인 동일화를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치다는 우리가 글을 쓰는 것도 자기 안의 수많은 타자와 함께하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프린트 아웃’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앞으로 온 메시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비록 그 메시지의 의미가 불분명해도 귀를 기울여 경청해야 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이는 자기 안에 있는 숱한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우치다의 세계에서 ‘어른’이 되는 것과 ‘창조적 글쓰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표로 삼을 ‘선생’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시대, 그의 책을 읽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어른의 글, 어른의 말이 고프다는, 허기를 느낍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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