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는 2015년 8월 전이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과 인간의 삶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따뜻한 학자였다.  알마 제공
올리버 색스는 2015년 8월 전이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과 인간의 삶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따뜻한 학자였다. 알마 제공
의식의 강 /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책은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이고 탁월한 저술가인 올리버 색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집이다. 2015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 ‘의식의 강’이라는 제목과 윤곽을 제시하고 케이트 에드거 등 3인의 동료에게 출간을 부탁해 빛을 보게 됐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린 만큼 색스의 글은 깊이 있지만 쉽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흥미진진하다. 그가 다루는 지식의 영역은 진화학·식물학·화학·의학·신경과학·예술을 아우르고, 호기심의 범주는 하등동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를 망라한다.

이 중에서도 관심의 초점은 진화론,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이다. 꽃 연구를 통해 진화론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던 찰스 다윈, 인간의 불가사의한 행동을 연구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시간·기억·창의력에 관한 경험적 특이성에 주목했던 윌리엄 제임스 등 많은 과학자의 연구 업적과 의사로서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들의 임상 기록을 바탕으로 과학사의 중요한 논점들을 심도 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주제는 넓고 깊지만 전달 방식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의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와 자전적 경험을 버무린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단편소설 같다.

예를 들면, ‘지렁이와 같은 하등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정신세계가 있을까’이다. 이런 궁금증은 다윈과 조지 존 로마네스, 허버트 스펜서 제닝스 같은 과학자들의 선구적 연구로 비밀이 벗겨졌음을 밝힌다. 그리고 지렁이와 해양동물을 만지작거리며 생물학자를 꿈꿨던 저자의 유년시절 경험을 통해 친근함을 덧붙인다.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만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1901년 프로이트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진 이 문제는 잘못 듣기, 잘못 읽기 등의 사소한 실수가 ‘깊이 억눌린 감정과 갈등의 표출’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실제로 ‘루게릭병에 걸린 업계 최고의 홍보전문가’(Publicist)를 ‘루게릭병에 걸린 업계 최고의 갑오징어’(Cuttlefish)로 오해한 일화를 공개한다. 그는 분명 잘못 들었지만 정교한 신경계를 가진 두족류(문어·갑오징어 등)라면 충분히 루게릭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어릴 때 집 뒤뜰에 떨어진 ‘테르밋 소이탄’(불태우기 위한 폭탄) 에피소드는 기이할 정도다. 그는 그 일을 학창시절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으로 생생히 기억하는데 실은 형이 보내준 편지 내용을 읽었던 것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저자는 “인간의 기억이란 지속적으로 재범주화되고 다듬어지므로 서사적 진실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해도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적 정보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러 동식물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며 “지금의 인간은 어쩌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연의 결과물이고, 또한 그 삶은 더욱 소중하고 경이로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이것이야말로 저자 특유의 통찰력이며, 글쓰기의 힘이다. 그는 정신이라는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를 대중과 함께 소통하려고 애쓴 가장 따뜻한 학자였다. 252쪽, 1만65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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