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대북 만들다가
아들이 올림픽조직위 기증 제안
내 이름 걸고 처음 만든 대북”
“평창에서 10년을 공들여 만든 제 북소리를 들으면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9일 오후 8시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은 웅장한 한국의 전통 대북 소리로 시작을 알린다. 이 북을 제작한 경기 무형문화재 30호 악기장(북메우기) 보유자인 임선빈(68) 장인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개회식에 초대받은 그는 “전 세계인이 내 북소리를 듣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어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도 “지금까지 나온 대북 중 최고의 소리를 낼 거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대북은 지난해 4월 임 장인과 북메우기 전수자인 아들 임동국(34) 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울림의 탄생’(감독 이정준)을 촬영하며 만들기 시작했다. 임 장인은 “10년 전부터 나라의 큰일에 쓸 북을 만들 생각으로 소나무를 켜서 말려왔다”며 “이정준 감독이 다큐를 찍겠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내 인생의 마지막 대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울림판 지름이 2m이고 길이가 2m10㎝인 이 북의 제작비는 약 3000만 원. 아들은 아버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큰돈을 들여 대북을 만들자 이 북을 뜻깊은 일에 쓰이게 하기 위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기증 제안을 했고, 조직위가 이를 받아들여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사용하게 됐다. 임 장인은 “오랜 시간 재료를 준비해와 부담이 크지 않았다”며 “요즘도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 힘들지만 국가의 큰일에 참여했다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선천성 소아마비를 안고 태어난 임 장인은 피란 중에 부모님이 소아마비 치료 약을 잃어버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그가 10세 되던 해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곁을 떠나 혼자가 된 후 걸인들과 움막 생활을 하다가 구타당해 청각까지 잃었다. 움막을 도망쳐 나온 그는 시장통에서 우연히 만난 북 장인의 제자가 돼 50년 동안 북 만들기에 매진해왔다. 북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사용된 대북을 비롯해 청와대 춘추관 북, 백담사 법고, 대전 엑스포 기념 북, 통일전망대 북 등의 제작에 참여한 임 장인은 1999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됐고, 6년 전 자신의 공방을 차려 독립했다. 그는 “그동안 만든 북은 보여지는 데 치중한 북이었지만 내 이름을 걸고, 처음 만든 이번 대북은 소리에 정성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임 장인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보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몸이 불편한 나도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비장애인들은 조금만 힘들면 주저앉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아들에게 길을 터주고, 나는 전통 북을 복원하는 데 힘쓰겠다”며 “온도와 습도에 관계없이 사시사철 같은 소리를 내는 최고의 북을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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