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높이면서 영세 사업주와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조성한 ‘일자리 안정자금’의 신청률이 3월이 됐는데도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현재 일자리안정자금을 받는 근로자는 102만9000명으로 정부가 추산한 236만4000명의 43.5%를 기록했다. 국민 혈세(血稅)를 3조 원 이상 쏟아부어 민간 기업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3월이 됐는데도 신청률이 50%가 안 된다는 것은 속된 말로 ‘망한 정책’이라는 뜻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을 총동원하고, 홍보·광고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도 결과가 이렇다. 애당초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6.4%가 한국 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반증(反證)이다. ‘감(感)’ 빠른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올 1월 초 기자들과 만나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률이 낮을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부당하게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는 것(부정 수급)을 걱정하기보다는 일단 신청률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률이 낮다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무원의 자기 합리화(合理化)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최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등에서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이 신청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언제 신청해도 소급해서 1년 치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개 공무원은 어려운 과제를 맡으면 2가지 방식으로 일한다는 말이 있다. 첫째,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인사권자(예컨대 대통령)가 지시하면 성사시키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두 번째 방식이 등장한다. “당신들이 의미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컨대, “일자리 안정자금을 100만 명 이상 신청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언제 신청해도 소급해서 1년 치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신청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잘못된 점을 찾아 개선하려는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한국 경제도 이제 덩치가 커지고, 기초 체력도 나름 튼튼해서 정책 하나 잘못됐다고 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료가 경제 현안을 입맛대로 해석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 경제 관료가 주로 한 게 바로 이것이다. 위기의 징후가 뚜렷한데도 국민 세금으로 다녀온 해외 유학(留學)을 통해 배운 지식으로 겉만 번드르르한 해석을 늘어놓으면서 국민에게 “별문제 아니다”라고 세뇌 교육을 한 것이다.
정부는 오는 15일 또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여부도 함께 발표한다고 하는데, 정부 스스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3.0%로 예상하면서 무슨 명분으로 또다시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나설지 모르겠다. 벌써 “추경 편성 요건을 규정한 국가재정법은 사실상 ‘죽은 법(法)’”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순리가 아닌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견강부회, 곡학아세가 불가피한데, 과연 어떤 명분과 논리를 들고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hae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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