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펴낸 소설가 한승원
詩·소설만 위대하다 여기다가
‘에세이가 가장 솔직’깨닫게돼
물도 도전적으로 흐른다는 것
요즘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파
딸 한강은 이미 나를 뛰어넘어
“요즘 젊은이들이 버틴다고? 우리는 젊어서 개긴다고 했다. 버티는 것보다 더 도전적인 게 개기는 것이다. 흔히 ‘헬조선’이고 어쩌고 하는데 그 속에 나를 빠뜨리는 것도 자신이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도 자신이다. 물도 결코 순조롭게만 흐르지 않는다.”
1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 작가는 “젊어서 수필, 에세이 등은 잡문이라고 생각했다. 시나 소설만이 위대하다는 덜떨어진 생각을 했었는데 살아가면서 에세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자기 언어가 아닐까 생각해 이번에 산문집을 내게 됐다”면서 “우리 자식과 요즘 젊은이들에게 꽃도 도전적으로 피고, 물도 도전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에세이집은 22년 전 전남 장흥으로 낙향해 ‘해산(海山) 토굴’에서 지내며 집필에 몰두해온 작가의 자전적 글이다. 한 작가는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며 ‘이쯤에서 자신을 성찰해보라’고 책을 통해 독자에게 은근히 권유한다.
한 작가는 “봄이면 꽃이 피지 않나. 나무에서 잎사귀, 줄기, 꽃의 순서로 피어난다. 그런 나무들은 한겨울 동안 그냥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도전적으로 꽃을 준비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엄동설한을 누가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비유했다.
한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사실 그는 “누구보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일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소처럼 자신의 목에 멍에를 걸고” 끌고 나갔다. 그는 “나는 젊은 시절 카뮈와 키르케고르에 빠진 실존주의자였다. ‘시시포스의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산정으로 운명의 바위를 굴리는 일을 거듭했다”면서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는 말을 모토로 살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 딸을 둔 아버지로서 한 작가는 산문집의 끝에 부록으로 ‘병상일기’도 붙였다. 지난해 말 지독한 독감에 걸려 3개월간 병원에서 투병할 때 쓴 것이다. 처음엔 수필집에 넣을 생각이 없었지만 편집자의 간곡한 청으로 자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로 완성했다. ‘병상일기’ 14편에는 아들과 딸을 향한 따뜻한 부정(父情)과 날카로운 금언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의 눈빛이 별빛과 달빛을 만든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도록 하여라. 그 눈빛으로 너희들만의 풍경을 창조하도록 하여라.”
한 작가는 “아들, 딸이 문학을 해서 그들 앞에 내가 전범(典範)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며 “돌아보니 나도 늘 길을 잃었더라. 하지만 잃었다가 다시 길을 찾기를 반복했다. 인간이기에 늘 길을 잃고 다시 각성하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은 한강 작가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부문상 수상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이 부문에 후보로 뽑힌 날이었다. 아침 일찍 KTX를 잡아타고 상경한 아버지는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냥 “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러나 “한강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이 너무 좋다. 그는 진작에 나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효도는 승어부(勝於父)”라며 미소 지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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