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관악 종합캠퍼스 기공식에 부쳐 시인 정희성이 쓴 시의 한 구절은 유명하다.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과장된 축시의 성격상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관악’을 ‘청년’이라는 말로 대체하면 그대로 사실적 진술로 바뀐다. 나라의 장래가 궁금하다면 미래를 짊어진 청년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에서 조국의 벅찬 미래를 기대할 사람은 없다. 도서관은 토익과 각종 수험서로 뒤덮인 지 오래다. 오로지 안정된 직장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에 파묻혀 고시 낭인으로 사는 수많은 수험생의 창백한 표정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연애·결혼·출산 포기(3포)에 이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꿈과 희망마저 포기했다는 ‘7포세대’라는 자조적 표현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헬조선, 흙수저 등 청년들이 내놓은 신조어들은 절망의 언어로 점철돼 있다.
사회지표들도 그런 풍자를 뒷받침한다. 25∼29세 청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16년 기준 7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0.5%)에 한참 못 미치는 31위다. 30∼35세는 더 밀려 32위까지 떨어진다. 취업의 질마저 안 좋다. 청년 신규 취업자의 비정규직 비중은 64%에 이른다. 출산율은 또 어떤가? 1.17명의 참혹한 출산율은 나라의 존망를 걱정할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구직 청년들을 절망케 하는 채용 비리(非理) 사건이 터졌다. 지난 1월 국민은행 등 5개 은행에서 22건의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은행권이 관리하는 ‘VIP 명단’의 자녀들을 특혜 채용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이를 조사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바로 그 기관의 장인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특혜 채용을 한 장본인으로 밝혀져 지난 12일 사퇴했다. 그는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에 자신의 친구 아들을 자사 은행에 추천했다. 그는 “추천은 했지만, 채용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의 변명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희대의 궤변을 연상케 한다.
청년 구직자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는 것은 ‘VIP’만이 아니다. 이른바 ‘노동’과 ‘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는 대기업 귀족노조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현대차노조는 정년퇴임 하는 장기근속자 직계가족에게 우선 채용권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했다.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경우 마찬가지로 직계가족 특혜 채용을 명문화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2014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고학력자들이 부잣집 저학력자들보다 경제적 풍요가 더 낫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계급과 신분적 지위를 통제하더라도 교육과 지적능력 역시 신분적 지위에 맞게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결국, 아무리 과정상의 공정함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부의 세습과 계층적 불평등의 심화는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회의 평등이 더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결과의 평등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들은 능력주의가 만연한 영미 국가보다 훨씬 활발한 계층 이동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VIP’와 ‘귀족’들을 보노라면, 이런 사회학적 교훈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의 평등은커녕 ‘흙수저’들의 실낱같은 희망인 과정의 공정마저도 쉽사리 훼손되는 현실에서 누가 눈을 들어 청년을 바로 볼 수 있을까? 조국의 미래를 물을 수가 없다.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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