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 부장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 이후 한 달여 동안 한국 사회는 ‘정신적 고아’가 됐다. 추앙받던 민족 시인, 문화 게릴라로 불렸던 연출가, 세계적 명성의 예술 감독, 정의를 외치던 정치인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면서 추락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고 보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우리 모두의 멘털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큰 어른으로 존경받던 시인은 한마디 사과도 없이 외국 언론을 통해 자기변명을 늘어놓으며 그가 지켜온 모국어를 배반했고, 무대 위에서 세상의 진실을 펼치겠다고 공언해온 연극계 대부는 사과 기자회견을 거짓 연출했다. 폭로 뒤에 보여준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정치부터 문화예술계까지 일정 이상 세대에선 많은 이가 ‘미투’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어림짐작, 이에 대한 이 세대 전체의 침묵까지 더해져 모두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여기저기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한탄이 나오고 있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아버지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오면서 급속히 전개된 혈육 아버지, 그 부권의 몰락에 뒤이어 20여 년 만에 맞은 사회적·정신적 아버지의 몰락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시대 ‘큰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여기저기서 나왔었다. 존경받던 이의 타계 소식이 들릴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한국 현대사 속에서 우리를 이끌고, 변화시키고, 정신적·문화적 지주가 돼온 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지만, 빈자리를 대신할 어른이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공공적 지식인 자리를 전문가형 지식인이 채우고 성공한 셀리브리티가 멘토가 되는 시대에 큰 어른은 나오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 어른이 사라지던 차에 ‘미투’로 ‘어른의 부재’는 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이란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성공하면 누구나 멘토가 되는 그런 ‘능력주의’ 어른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책을 통해 ‘성숙한 어른’에 대해 탐색해온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는 “어른이란 모두가 오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하고 모두가 돌아간 뒤 찻잔을 설거지하는, 즉 모두가 꺼리는 ‘눈 치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어른의 필수 덕목으로 타인의 마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꼽았다. 나와 다른 사람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타자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전제하지 않는데,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투’ 이후 누구나 이를 계기로 우리의 폐부를 도려내고, 권력에 의한 폭력,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차별을 넘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한두 명의 뛰어난 어른을 따르는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타인의 마음,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어른이 되는 세상일 것이다. 고통에 대해 작가 수전 손태그는 이런 말을 했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한다.” 우리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ch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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