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기 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前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의 골자는 ‘핵(核) 있는 상태에서의 대화’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계기로 남북 고위급회담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남북의 특사 교환에 이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일련의 대화 과정에서 북핵 해결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안겨준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선물만 챙기고 검증 단계에서 매번 합의를 뒤집은 북한의 과거 행태를 고려할 때 마냥 기대할 수만은 없다. 바로 북핵 위기의 25년은 ‘위기→합의→파기→위기’의 악순환 역사였다는 점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북한이 통남봉미(通南封美)의 카드를 전격적(?)으로 제의한 것은 국제 공조의 제재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제2375호와 제2379호는 북한 경제에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통일부 장관의 ‘제2의 고난의 행군’ 가능성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북 제재로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광산물이 순차적으로 수출 금지되고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24개월 이내 귀환 조치는 국가 기관의 외화 수급에 차질을 초래했다. 이는 김정은의 통치자금 부족을 야기한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지난해 대중(對中) 수출이 37% 줄고 이로 인한 시장 위축 효과의 영향을 고려하면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은 -2% 이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KDI) 또한, 대북 제재로 정유제품의 공급량이 연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감축됨으로써 생산 활동에도 차질을 초래했다. 물론 북한의 대화 카드는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 대한 두려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제안한 대화 카드는 전형적인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이다. 이 전술의 기본은, 불리할 때 대화하고 유리할 때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중적 속성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대화 제안은 ‘핵 있는 상태에서의 대화’를 위한 위장평화 전략이라는 점이다. 바로 통남봉미의 진의(眞意)는 ‘시간 벌기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국가 핵무력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벌써 정부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남북 공동 번영’이라는 미사여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 구상은 동해와 러시아, 서해와 중국을 잇는 에너지·자원·물류·교통벨트 구축, 서해평화특별지대 추진과 남북 접경지대에 통일경제특구 지정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북핵 폐기 이후의 과제들이다.

북한의 핵은 ‘정의의 보검’으로 체제 유지의 버팀목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경제적 지원과도 교환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경제적 지원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 공조의 구조적 허점을 확대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전략이다. 특히, 북한 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국제사회의 촘촘한 제재와 최대한의 압박이 ‘핵 있는 대화’의 구조를 ‘핵 없는 대화’의 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이다. 또한, 정부는 ‘핵 없는 대화’와 ‘북핵 폐기’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한·미 공조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북한의 핵 인질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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