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폐쇄 예정인 한국지엠 군산공장 근로자 중 70%가량이 희망퇴직을 신청해 군산공장은 인위적 조치 없이 자연사하게 됐다. 군산공장은 1997년 외환 위기 직전 연간 30만 대 생산 규모로 지어졌다. 이후 21년간 국내엔 단 1개의 자동차 공장도 신설되지 않았다. 국내 자동차 공장 가운데 가장 젊은 공장이 가장 먼저 사망한 것이다. 공장의 생명은 생산성에 달려 있다. 글로벌 판매량이 1997년 200만 대에서 지난해 720만 대로 증가한 현대·기아차가 미국, 중국, 인도,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 등에 10개가 넘는 공장을 지었지만, 국내에 1개의 공장도 짓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21세에 요절한 군산 공장이 우리나라 제조업계의 민낯이자 불길한 전조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 정부 들어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목줄을 옥죄는 3종 세트가 동시에 시행되면서 기업의 기력이 더 쇠약해졌다. 강성 노조는 법의 보호를 받으며 기득권 유지를 위한 대선 청구서를 정부에 내밀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는 노조 눈치를 보며 기업 살리기보다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규제를 풀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는 개혁 법안들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이런 사이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14.7시간이 드는 미국 공장보다 같은 차량을 26.8시간 들여 생산하는 국내 공장 근로자가 더 많은 급여를 받는 비정상이 마치 정상처럼 받아들여지는 나라가 됐다. 단돈 20만 원을 더 받기 위해 4140억 원의 생산 손실을 초래하는 부분 파업을 불사하는 노조가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근로자는 독일 폭스바겐 근로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고, GM 본사가 곶감 빼 먹듯 알맹이만 챙기는 한국지엠이 정부의 수혈을 받아 이번에 생존한다 하더라도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존속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강성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잡아야 기업이 살 수 있다. 대한민국처럼 노조가 파업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 미국은 노조원 찬성률이 3분의 2 이상, 독일은 4분의 3 이상이어야 파업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대체근로 투입도 법으로 금지돼 있어 노조가 파업하면 공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과 독일, 일본은 파업 시 대체근로 제한 규정이 없어 노조가 파업해도 공장은 돌아간다. 임금과 단체협상 주기가 짧은 것도 파업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협은 1년, 단협은 2년마다 하게 돼 있다. 독일과 일본은 임협은 매년 하지만 단협의 경우 독일은 3∼10년, 일본은 3년으로 우리보다 길다. 미국은 임협과 단협 주기가 4년이다. 지난해 4월 임단협 협상을 시작해 24차례 파업 끝에 지난 1월 협상을 타결한 현대차는 다음 달부터 또다시 협상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13일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고 공무원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등 노동에 방점을 둔 헌법 개정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제조업계는 이참에 기업 생명권도 헌법에 담아 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y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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