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의 언어 /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1923년 이후 대중가요 분석
유행가 2만6250곡 수집·정리

초창기 158자 → 현재 486자
한 곡 노랫말 수 3배로 늘어
BTS‘팔도강산’ 사투리 秀作

‘연정의 대상’ 선생님 → 오빠
‘역’ 이별 → 만남장소로 변화
‘술’은 全시대 희로애락 소재


대중가요는 가장 서민적 문화다. 3000원짜리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젊은 청춘부터 고층빌딩의 회장님까지 누구나 쉽게 듣고 따라부른다. 시대와 장르만 다를 뿐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가(流行歌)’에 대한 대중의 애정은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늘 우리와 함께했던 유행가를 작정하고 분석한 책이 나왔다. 그것도 국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우리 말소리와 방언(사투리)을 가르치는 국어학자가 쓴 것이다.

저자인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언어를 연구하면서 대중과 밀접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문법이나 어문 등 논문에나 나올 법한 딱딱한 국어학이 아니라 음식, 방언, 생활에 관계된 말을 모으고 기록해왔다.

그 관심의 초점이 이번엔 음악으로 뻗쳤다. 저자는 연구실 서가 한쪽에 오래된 LP(레코드)판을 가득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마니아. 그는 국어학자이자 음악 애호가로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랫말들을 통계로 분석했다.

흔히 ‘딴따라’로 폄훼되는 유행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최초의 가요로 분류되는 ‘희망가’(1923)에서 현재 최고의 인기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의 노래까지 약 100년의 가요사를 추적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자료에 근거해 수집·정리한 곡 수만 무려 2만6250곡. 그러나 가장 신뢰한 ‘저본(底本)’은 뭐니뭐니해도 ‘노래방 책’이었다.

문학 언어보다는 속되다고 여겨지는 노랫말에는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세대 문화,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크로스 제공
문학 언어보다는 속되다고 여겨지는 노랫말에는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세대 문화,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크로스 제공
저자는 책을 ‘노래’ ‘말’ ‘사람’ ‘삶’ 등 키워드에 따라 크게 4부로 나누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배치했다. 1부 ‘노래’에선 노래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풀어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소월의 시가 노래로 많이 불린 이유. 김정희 ‘개여울’(1967), 활주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1978), 마야 ‘진달래꽃’(2003) 등 가요 중에는 김소월의 시를 사용한 곡이 유독 많은데 이는 규칙적이고 적당한 길이, 쉽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노래 한 곡에는 몇 글자나 들어갈까. 3분 정도 되는 노래 한 곡의 길이는 나팔통 모양의 축음기 위에서 돌아가던 유성기 음반의 형태에서 비롯한다. 약 25㎝ 크기 이 판의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노래의 길이가 3분 남짓이었다. 이보다 길면 판을 뒤집어야 하고, 짧으면 아쉬운 생각이 드니 대략 3분 내외로 굳어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가사의 글자 수는 평균 486자. 유행가 초창기(1930∼1940년대) 158자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2부 ‘말’에서는 노랫말의 여러 가지 속성 중 사투리 이야기가 흥미롭다. 가사에 사투리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1977년 길옥윤이 작사하고 혜은이가 부른 ‘감수광’이 노랫말에 사투리를 본격적으로 담은 최초의 시도로 보인다. 1987년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는 아예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워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매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사투리 노래는 세대를 뛰어넘어 최고의 아이돌 그룹까지 전파됐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팔도강산’이라는 좀 구수한 제목의 곡을 직접 쓰고 불렀다.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 불따고 전하랑께 우린 멋져 부러 허벌라게 아재들 안녕하십니꺼 내카모 고향이 대구 아입니꺼 그캐서 오늘은 사투리 랩으로 머시마 가시나 신경 쓰지 말고 한번 놀아봅시더/ 결국 같은 한국말들 올려다봐 이렇게 마주한 같은 하늘 살짝 오글거리지만 전부 다 잘났어 말 다 통하잖아 문산부터 마라도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사투리의 맛을 살려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방탄소년단에게 상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3부 ‘사람’은 노랫말의 주체인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사랑과 함께 유행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 집계됐다. 우리의 일상 대화에선 대명사를 제외한 명사 중에 ‘사람’이 가장 높은 사용 빈도를 보이고, ‘사랑’은 그보다 한참 뒤인 104번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노랫말에서는 ‘사랑’이 ‘사람’을 압도한다. 노래 제목에 쓰인 명사 중 1위는 ‘사랑’으로 전체 2만6000여 곡 중 7.83%를 차지한다. 그다음은 ‘사람’이 1.71%로 2위다. 가사로 살펴보면 더 뚜렷하다. ‘사랑’ ‘러브’ ‘love’ 등이 포함된 노래가 무려 65.22%에 달한다. 노랫말은 ‘사랑’이 없으면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4부 ‘삶’에서는 노랫말이 표현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 노래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래 속 연정의 대상은 ‘선생님’에서 ‘오빠’로 바뀌었고, ‘역’은 이별의 장소에서 만남의 장소로 변모했다. 하지만 소위 ‘다방 커피’가 ‘아메리카노’로 변하는 동안에도 ‘술’은 시대를 관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한 잔’으로 변함이 없었다.

저자는 “노랫말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노래로 불리기 위해 다듬어진 말이고, 부르고 듣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랫동안 우리 말을 연구한 학자가 던지는 유행가 이야기는 전혀 가볍지 않다. 대중문화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깊이 있는 이해가 있기에 따뜻하고 흥미로우며 설득력이 있다. 364쪽, 1만6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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