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욕설·비속어 쓸 수도 있지만
언어는 품격·권력관계 반영

현실에선 이해 충돌 다반사
모든 차별 불구 평등이 정당

한국어는 높임말·반말 복잡
현행 尊卑法 보완 필요하다


우리는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펼치려고 해도, 기업이 사업을 하려고 해도, 개인이 단체를 조직하려고 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입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은 각자의 활동에 필요한 해당 법률안의 통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국회가 시대의 변화와 미래의 상황을 고려해 제때 입법한다면 법규의 미비로 인한 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근대사회가 욕망을 가진 개인이 타인과 경쟁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동력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법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법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 해결사처럼 보인다.

법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아무리 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문제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을 봐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은 현실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사회의 문제를 예방할 수 없을까. 법은 인간의 특성과 사회의 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법은 사람이 어떤 심성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법의 사회 제도와 관련해 이야기해보자. 요즘 법에 인권을 보장한다고 명문화돼 있지만, 현실에는 폭력 등을 사용해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가 일어난다. 여기서 인권에 반하는 행위의 발생 원인과 관련해서 폭력 이외에 언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사람이 동물과 달리 과학 기술의 힘으로 고등 문명을 일궈낸 중요한 근원이다.

언어가 없다면 진리를 탐구할 수도 없고,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진리로 나아갈 수도 없다. 이처럼 언어는 객관적 진리를 찾아가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중개 역할을 한다.

의사소통에 쓰일 때 언어는 객관적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고 사람의 품격과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말에 욕설을 섞거나 입을 열 때마다 비속어를 즐겨 쓴다면 말하는 사람의 품격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뜻이라도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 사람의 품격은 홍보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제 우리는 나이와 지위에 따라 어미를 달리하여 사람을 대접하는 존비법(尊卑法) 또는 대우법(待遇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높임말과 반말 등으로 알려진 존비법은 영어나 중국어에는 없지만, 한국어에서 복잡하게 운용된다. 존비법은 생활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꼭 익혀야 하는 중요한 어법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유독 어려워하고 간혹 방송에서 높임말과 반말을 혼동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존비법이 다른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을 입증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존비법이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언어에서 구현된 규범이고 현실의 언어생활에서 이를 당연히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어린 손주가 조부모에게 반말을 하면 옆에 있는 부모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화들짝 놀라며 바로 교정 작업에 들어간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뭐뭐 ‘해’라고 하지 않고 뭐뭐 ‘하셨어요’라고 해야지.” 한국인은 말을 배울 때 무수한 시행착오와 교정 작업을 통해 존비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다.

오늘날 헌법 제11조 제1항에 평등권이 보장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에 따르면 존비법은 사회적·문화적 생활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과 명백하게 충돌한다. 존비법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이’에 따라 존칭해야 할지 비칭해야 할지 결정하게 된다. 이때 존비법은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등적으로 대우한다. 존비법이 개인의 선택을 허용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이에 예민해지고 나이를 대우하는 방식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높임말의 대접을 받는 사람과 반말의 대접을 받는 사람이 나뉘게 되면, 전자는 후자를 하대하고 후자는 전자를 우대하는 권력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사람이 비대칭의 언어생활에 익숙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등하게 말을 주고받는 삶의 문화가 싹트기가 쉽지 않다. 윗사람은 인권에 반하는 말을 해놓고 의식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은 할 말이 있어도 자유롭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불편한 언어생활이 지속되기 쉽다. 심하면 회의하자고 해놓고 침묵이 지속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어법이 더 이상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면 존비법은 나이를 떠나서 평등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존비법은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면서도 지금까지 성찰의 대상이 된 적도 없는 적폐가 될 수 있다.

언어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자존감을 상하게 한다면 존비법은 분명히 언어에 의한 폭력이자 폭력을 조장하는 어법이다. 모두가 말을 높여서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 현행 존비법의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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