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김외숙(왼쪽) 법제처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김외숙(왼쪽) 법제처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대기업 매출집중도 16.4%…‘경쟁력집중 규제’ 근거 사라져

美·EU는 특별한 규제 않고
日도 경제활성화 위해 폐지

韓, 집중도에 수출까지 포함
국내기업에 족쇄 채우는 격

3년간 매출집중도 하락하자
고용집중도마저 9→8.3%로


국내 10대 대기업집단의 국내시장 매출 집중도(전체 내수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가 16.4%(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주요 대기업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경쟁력집중 억제 사전규제 패키지’의 근거가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를 폐지하고 경쟁법의 중심을 사후 규제 폐지 및 경쟁 촉진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1일 한경연 및 재계에 따르면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 대상을 지정하고 지주회사 규제·신규 순환출자 금지·금융 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복합적인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은 기업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규제를 하지는 않으며, 기업집단의 형성행위나 계열 회사 간 거래행위 등이 경쟁 제한성을 가질 경우에만 규제하고 있다. 유럽은 기업집단 상당수가 피라미드 또는 상호 출자구조를 띠고 있지만, 독점금지법에 출자 관련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은 2002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점규제법을 개정하면서 ‘주식 보유 총액 제한 제도’ 등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를 실질적으로 폐지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는, 경쟁이 제한되는 경우에 한해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경쟁법의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강력한 사전 규제”라면서 “국제무역 의존도가 높은 개방 경제인 데다, 기업의 활동 무대가 세계 시장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국내 기업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허상’에 근거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유 팀장은 “폐쇄 경제에나 어울리는 ‘칼라파고스(코리아+갈라파고스)’ 규제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 간 경쟁에서 우리 스스로 한국 기업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와 정책집단의 ‘오진’이 비합리적 정책 처방을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시장과 무관한 해외 매출(수출)까지 포함해 경제력 집중도를 따져 온 탓에 내수 시장에 미치는 대기업집단의 영향력이 과장돼왔다는 것이다.

해외까지 포함할 경우 대기업집단의 매출 집중도는 8%포인트~12%포인트까지 부풀려 계산된다. 국내 21대 대기업집단의 국내시장 매출 집중도는 2016년 기준 해외 매출까지 포함하면 28.3%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20.3%로 떨어지고, 10대 대기업집단으로 좁혀 봐도 24.3%에서 16.4%로 떨어진다. 같은 해 21대 대기업집단의 해외 매출은 455조6000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에 육박하는 43.9%를 기록했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매출까지 포함해 집중도를 따지고, 사업 확대를 가로막는 사전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치열한 수출 전선에서 무한 경쟁을 펼치면서 선전하고 있는 선도 기업의 ‘성장판’을 옥죄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3년간 매출 집중도 하락에 따라 고용 집중도도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이 일자리 창출 정책과 상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1대 대기업집단의 고용 집중도는 2013년 9%에서 2016년 8.3%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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