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역사학자가 시골 마을을 돌며 국책사업에 필요한 고문서를 빌렸다가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까지를 담은 긴 여행의 기록이다. 역사학자는 고문서를 빌린 지 50년 만에야 원래 주인을 찾아 다 돌려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학자는 왜 고문서를 빌렸고, 그걸 되돌려주는 데 왜 이리 긴 시간이 걸렸을까.
일본 패전 이후인 1949년. 일본 정부는 ‘일본상민연구소’를 발족한다. 우리 식으로 부르자면 ‘일본민중연구소’쯤 되겠다. 정부는 연구소를 열고 일본의 농어촌에 잠자고 있는 고문서를 대량으로 수집해 사회사(史) 자료관을 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구소에 주어진 임무는 고문서 수집이었다. 연구소 지역 분소에서 상근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저자는 마음의 준비나 목표도 없이 고문서를 해독할 능력도 경험도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오래된 문서의 가치를 몰라보고 불을 때거나 벽이며 병풍을 바르던 시절이었다. 저자는 시골 마을을 돌며 무차별로 고문서를 빌리기 시작했다. 반납을 약속했지만 마음뿐이었다. 고문서는 제대로 분류도, 기록도 되지 않았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정부가 재정난을 이유로 사회사 자료관 건립을 포기한 것이었다.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돌려주겠다 약속하고 빌려온 문서들은 방치됐다. 저자가 고문서를 돌려주겠다고 결심한 건 고교 교사로 일하던 중 문득 자신이 ‘문서도둑’이 돼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고문서 반납에 나선 그는 방치된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해 가며 무려 18년에 걸쳐 고문서 반납을 하게 된다. 자신이 빌린 것은 물론이고 세상을 떠난 연구원들이 빌린 문서들까지 하나하나 어렵사리 주인을 찾아 돌려줬다.
저자는 고문서의 기록을 더듬어가며 문서 한 건 한 건이 얼마만큼 무게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기록과 서술의 행간 속에서 저자가 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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