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위원

‘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은 불사조는 아닐망정/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獄死)한 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 ‘편복(편복)’ 일부다. ‘편복’은 ‘박쥐’를 일컫는 한자어다. 앞·뒷다리 사이에 비막(飛膜)이 생겨,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새처럼 날 수 있는 박쥐는 동·서양의 상징이 서로 정반대다. 동양에선 복(福)·경사·행운 등을, 서양에선 마녀·악마·액운 등을 나타낸다. 이육사는 그런 의미와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조국을 어두운 동굴에 사는 박쥐에 빗댄 것이다. ‘편복’은 검열에 걸려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고, 1946년 간행된 유고(遺稿)시집에 담겼다.

본명 원록을 활로 개명했던 그는 국내와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17차례나 투옥됐다. 육사(陸史)를 아호(雅號)로, 이육사를 필명으로 내세운 것도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때의 수인(囚人)번호 264를 차용(借用)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세계적 작가 루쉰(魯迅) 등과 교유하며 문학적 자극을 받은 그가 처음 발표한 시는 ‘말’(1930년)이지만, 시단에 정식 데뷔한 작품은 ‘황혼’(1935년)이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 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하고 시작한다. 그 후 그의 시는 상징과 은유를 통해 담아낸 고난 속의 민족 현실, 미래지향적 독립 의지, 웅혼(雄渾)한 기개 등이 두드러진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하는 ‘광야’,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하는 ‘절정’도,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하는 ‘청포도’ 등 대표작 모두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그의 고향인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에 유족이 기증했던 ‘편복’ 친필 원고의 문화재 지정을 지난 2월 27일 예고했다. 오는 26일로 예고 기간이 끝나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로 확정된다. 그 원고를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계 안팎에서 맑고 올곧은 그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도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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