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산으로 가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예전 공약집을 다시 뒤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정상회담을 4월 말에 열기로 한 것이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나온 뒤였다. “임기 첫해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 이는 지난해 5월 대선의 공약이 아니었다. 이미 2012년 9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밝혔다. 지난해 대선에선 ‘임기 첫해’가 ‘취임 이후 1년 내’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헌의 뿌리도 공약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의 치밀함과 신념, 공약에 대한 집착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대통령은 경제정책에서도 5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공약 1호는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일자리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였다. 공무원 증원,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요즘 한창 논란이 되는, 그러나 예상대로 부작용만 보이는 정책도 모두 2012년에 구체화돼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를 통해 70만, 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산 역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앞으로 대통령은 민간 기업에 청년고용을 의무적으로 할당할지 모른다. 따르지 않는 기업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 대선 공약이었다. 취임 초 대통령은 일자리 현황판을 집무실에 설치하는 ‘쇼’를 했다. 하지만 최근 신규 취업자가 8년 내 최저치로 떨어졌다. 청년실업률은 쭉쭉 올라가고 있다. ‘무능하고 나쁜 정부였다’고 깎아내린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못하다. 제대로 망신당한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더 센 처방전을 찾을지도 모른다. 갈수록 산으로 간다고 말한 이유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에는 선한 의지가 보인다. 대통령의 문제의식, 누가 반대할까. 그러나 책상 위의 난제들은 대통령이 착하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시장(市場)은 단순하지 않다. 어느덧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은 대통령 한 명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꼬여 있다. 오히려 대통령의 정책은 정규직과 기득권의 성(城)만 공고히 하는 면이 있다. 강남 부동산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강남 아파트 가격을 끌어 올린 것, 최저임금으로 취약층 일자리만 날린 점이 대표 사례다. 근로시간 단축도 근로자의 실질 급여만 축소하는 문제를 낳을 공산이 크다. 지금 대통령은 단 한칼에 세상을 바꿀 듯한 기세로 공약 이행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답은 공약집이 아닌 교과서에 있다. 거대 노동조합이 저항하더라도 노동개혁과 원칙적인 기업·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가진 자’가 미워도 기업이 원하는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외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민국은 골대를 옮기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개혁에 나설 능력도, 전략도 없이 무모하게 구호만 외치다가 쓰러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 높은 국민적 지지와 도덕성, 기득권 노조도 적폐로 몰아세울 수 있는 적극적이고 단단한 지지층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작이 된 것처럼 문 대통령도 공약집 밖에서 최대 업적을 찾을지 모를 일이다.
m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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