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이 ‘단계적 동시 조치를 통한 비핵화’ 방식을 거론한 가운데,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시진핑 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29일 방한했다. 문재인 정부에 북·중 정상회담을 ‘디브리핑’해주고, 이와 관련된 후속 협의도 가질 것이다. 이날 판문점에선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일정 등을 정하기 위한 고위급회담도 시작됐다. 북한 공연을 위한 한국 예술단 선발대도 서해 직항로를 이용, 평양으로 갔다. 중국의 ‘정상회담 끼어들기’에다 김정은의 언급으로 북핵 해법이 더욱 꼬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외교전이 어지럽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본질인 북핵에 집중해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데 김정은의 ‘단계적 비핵화’ 주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평양을 다녀온 뒤 전한 ‘김정은의 조건없는 비핵화 의지’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온 것인지, 낙관적인 얘기만 국민과 미국 측에 소개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김정은이 정 실장과 시 주석에게 다른 말을 했을 수도 있다. 머지않아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김정은 의도가 무엇이든 한국 입장은 선명해야 한다. 단계별 비핵화 협상은 비핵화를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제네바 합의 이후 25년 간 북한은 비핵화 단계를 잘게 잘라 단계별 보상을 받으면서도 핵 폐기엔 불응하며 고농축우라늄(HEU)까지 개발했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한 데 대해 유엔은 고강도 제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비핵화에 앞서 한·미가 선의(善意)에 기반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도둑이 경찰을 향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일이다.
따라서 문 정부는 북한과 중국을 향해 북한의 완전한 핵(核) 폐기, 즉 CVID가 관철되기 전에는 어떤 형태의 제재 완화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문 정부 스스로도 남북 교류가 그런 잘못된 신호로 오인되지 않게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벌써 중국이 대북 제재 고삐를 늦출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북 최대 압박과 제재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