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로 6·13 지방선거가 71일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보수 진영은 끝 모를 터널 속에서 헤매는 형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던 1997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디도스 선거부정 사건 등이 겹쳤던 2011년에 이어 또다시 보수 진영이 주요 선거 참패는 물론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이른바 ‘보수 7년 위기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보수 정치권이 2004년과 2011년의 위기를 돌파했던 과감한 혁신과 외연 확대, 보수 통합 노력 등을 이번엔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특단의 변화 없이는 참패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4년과 2011년, 천막당사와 경제민주화 = 14년 전이었던 2004년 3월 25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여의도 맞은편 천막당사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17대 총선(4월 15일)을 20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3년 10월 불법 대선자금 실체가 밝혀지고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처리 후폭풍으로 당의 존립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당 지지율은 8%대까지 추락했다. 박 대표는 취임 첫날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천막당사로 옮겨 당 개혁을 주도했다.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한 것도 이때였다. 한나라당은 공천에서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다. 16대 의원 가운데 60명이 불출마 또는 공천 탈락해 40.5%의 물갈이가 이뤄졌다. 총선 비례대표 후보는 전원 신인으로 공천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위기에 빠졌을 때도 당은 다시 살아났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당의 상징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진보진영이 독점해 온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다도 과감히 받아들였다. 김종인·이종석·이상돈 당시 비대위원을 영입했는데 모두 경제민주화와 청년, 정치개혁 등 당시 보수가 취약한 어젠다를 상징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승부수는 적중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확보한 데 이어,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을 꺾고 승리했다.
◇쇄신 지지부진한 2018년 = 2018년의 보수 정당에선 이런 과거의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보수가 다시 살아나려면 인적청산과 참회가 필요한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이대로는 결코 몰락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한 이래 보수가 궤멸 위기에 처했는데도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다급함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당권을 잡은 후 정책과 인적 쇄신을 예고했으나 당 혁신작업은 박 전 대통령을 제명하는 데 그쳤다. 당 개혁을 진두지휘할 혁신위원장으로는 “박근혜 탄핵은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해 온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당시 류 위원장은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 실세들을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물어 출당시키는 혁신안을 발표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했고, 혁신위가 신보수주의의 주요 개념으로 제시했던 ‘서민중심경제’도 내용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정당들이 위기 때마다 꺼내들던 새로운 인재영입도 지금으로선 성과가 전무한 형편이다. 홍정욱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거론되는 영입인사마다 불출마 선언을 했다. 결국 이인제 상임고문과 김태호 전 경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옛 여권 인사들이 지방선거 후보로 당 간판에 서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지지층마저 한국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