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 없어 정신건강 관리 허술
자격증 없어도 상담소 개설 가능
증상 악화·성범죄에 노출 되기도
건강보험혜택 없어 비용 부담 커


우울증과 각종 중독, 공황장애 등 정신 질환에 심리 상담을 통한 치료가 널리 보급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 심리상담사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한 관련법이 없어 정신 건강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적 허점 탓에 심리 상담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자격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격 관리다.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는 상담심리사의 경우 국내에 약 4000개의 관련 자격증이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석·박사 학위와 수천 시간의 상담 경력이 있어야 학회로부터 인정받는 자격증도 있지만,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취득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자격 종류가 다양하고 이를 통합해 관리하는 기관이 따로 없는 탓에 무자격에 가까운 이들도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사설 심리상담소를 차리기 위해선 민간 심리 상담 자격증도 필요가 없다. 신용카드 결제를 위해 세무서에 신고하는 등 일반적인 절차만 밟으면 누구나 상담소를 운영할 수 있다. 제대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면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노린 성범죄 등 또 다른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신 건강 관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학위를 보유한 상담사에게 심리 상담을 받으면 50분에 10만 원 정도가 든다.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위해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결국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이 심리 상담을 주로 이용하게 된다. 실제로 4일 신효정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한국상담심리학회 선임이사) 분석에 따르면, 전국 사설 상담센터 5751곳 중 절반이 넘는 3240곳이 서울에 몰려 있다. 서울 25개 구 중에서도 강남구가 353곳, 서초구가 329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금융 단지인 여의도가 있는 영등포구에는 세 번째로 많은 220곳의 상담센터가 있다. 반면 중랑구는 53곳, 강동구는 58곳, 도봉구는 63곳, 강북구는 67곳에 불과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선 심리 상담도 의료 행위로 인정받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유앤미심리상담연구소의 경우 외국인이 내담자의 80%가 넘는데, 이곳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외국인들은 자국에서 가입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도민정 유앤미심리상담연구소장은 “외국인들은 심리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어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유영권 한국상담심리학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탓에 경제력이 부족한 경우나 중장년, 노년층은 정신 건강 관리를 쉽게 받지 못하고 있다”며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심리 상담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없도록,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하는 등 제도권 안에서 심리 상담이 이뤄지게 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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