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정책 모조리 폐기·수정
축적 없이 ‘제로 베이스’ 출발
對北정책, 성향 따라 ‘극과 극’
협력 강조 ‘퍼주기’ 논란 일고
압박 주력 ‘대화 창구’ 사라져
교과서·과거사 등 갈등 유발
연속성 보장되는 시스템 절실
대한민국의 주요 정책은 기껏해야 5년짜리에 불과하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마다 저마다의 국가전략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주요 정책은 손바닥 뒤집듯 폐기되거나 수정됐다. 특히 역대 정부 대부분은 임기 초반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데 주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Anything but Rho(노무현 대통령 정책만 아니면 뭐든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을 백지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9년여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180도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5년마다 ‘제로(0) 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하는 격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축적의 시간’이 없는 단기 전략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며 “연속성 있는 국가전략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5년마다 뒤집히는 경제정책 기조 = 경제 정책의 핵심 기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경됐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핵심으로 한 ‘DJ노믹스’를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와중에 집권했던 만큼 대기업 및 금융기관을 상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등 대기업 개혁에 많은 공을 들였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화두는 국가균형발전이었다. 수도 이전(집권 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변경)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강력히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혁신을 브랜드로 청와대에 참여혁신수석을 두고 혁신도시 건설 등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혁신이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는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개혁에 집중했다. 4대강 사업 등 녹색성장, 기업의 해외 활동 지원을 통한 자원 외교 등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산업과 문화 등의 융복합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조경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이던 녹색성장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격하되는 등 전임 정권에서 추진한 녹색성장은 자취를 감췄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선진국 진입)’이나 박근혜 정부의 ‘474 공약(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등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숫자로 구체화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동시에 내걸고 내수 진작과 신성장 동력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이념 성향 따라 180도 달라지는 대북 정책 = 역대 정부는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별도의 용어가 있을 만큼 연속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 정책’,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북핵을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0년 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해 남북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대북 포용적 자세를 견지했다.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이어갔는데 북한의 도발에도 금강산·개성 관광사업 허용, 기업인의 방북 투자 장려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 같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성사됐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남남갈등이 촉발됐다. 이어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진보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대북 압박에 주력했다. ‘비핵·개방·3000’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각각 추진했지만, ‘북한의 변화’라는 대전제를 내세우면서 남북 관계는 극도의 경색 국면을 맞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정책의 불투명성 논란이나 ‘대북 퍼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채널이 아예 사라지는 상황이 초래됐다.
◇사회 정책도 정권마다 널뛰기 = 대학입시정책, 역사교과서, 과거사 정리, 부동산 대책 등 사회 분야 정책 역시 정권마다 모습을 달리했다. 역사 교과서는 정권에 따라 다시 쓰기를 반복했고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 정부 교과서 국정화에 관여한 25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데까지 확대됐다.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은 등급제와 선택제, 절대 평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면서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했다. 1999년 고교 교육 정상화 차원의 새로운 대입제도를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교육부에서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으로 바뀐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기 하나로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이른바 ‘이해찬 세대’로 불리는 수험생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최근에도 수시·정시 확대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영어 교육의 경우 이명박 정부에서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추진했던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추진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유예되는 등 일관된 정책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은 역대 정부마다 강력한 규제와 완화책이 번갈아 시행되면서 집값은 출렁였다. 과거사 문제 역시 진보 정권에서는 ‘진실 규명’, 보수 정권에서는 ‘사회 통합’ 등 방점이 달랐다.
미래정치연구소 부소장인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일 통화에서 “한국 정치는 대통령 단임제의 한계와 장기 비전 설계에 익숙지 않은 정치 문화 등으로 중장기적 국가전략 수립이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이라며 “경제·대북 정책 등 국가 전략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만큼 권력구조 개편 등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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