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1심 재판에서 직권남용, 뇌물 등을 이유로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이지만, 과거 5·18 관련 반란죄, 내란죄 등이 적용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7년형이 최종 선고됐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무거운 형이다.

당시 대법원이 너무 가벼운 형을 선고했고, 이번 1심 재판이 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판결문에서 강조됐던 것처럼 “대통령이 이 나라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라면, 과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비교할 때 형량(刑量)을 납득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는 점, 대통령으로서 해선 안 될 일들을 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정당하다는 점을 부인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마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처벌이 국정혼란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 대통령의 권력 오남용 문제는 이미 개인의 문제를 벗어난 제도의 문제이며, 이 판결로써 제왕적 대통령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최근 개헌(改憲)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분권(分權)할 것인지에 있다. 최순실 사건에서 확인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정부-여당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 권한을 일부 축소하고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야당들은 분권형 정부 형태(이원정부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을 책임총리에게 이양함으로써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 이를 통한 선의의 경쟁을 강조한다.

여야 양측의 주장이 나름의 일리를 갖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정부-여당은 현행 제도가 제왕적 대통령제는 아니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비정상적인 권력 오남용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야당들은 제왕적 대통령 문제는 사람의 문제 이전에 제도의 문제이며, 헌법상의 권력 구조 자체를 바꿔야만 제왕적 대통령의 재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여·야의 견해 차이는 국민 눈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견해가 틀린 게 분명하다. 최순실 이전에 각 정부 때 대통령을 움직였던 실세들을 생각해 보자. 노태우 정부의 박철언,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 김대중 정부의 김홍업 등 대통령에게 비정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세들이 대부분 대통령의 임기 말에 크게 문제 됐다는 공통점은 우연일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최순실은 누구인가 하는 세간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대통령의 권력 오남용에 대해 검찰이나 감사원 등 사정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도 공통점이다. 국회나 법원, 헌법재판소는 삼권분립에 따라 그나마 대통령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지만, 대통령 소속의 행정기관들은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와 임기제, 감사원의 독립성 규정 등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통령의 수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대통령 권력 오남용의 병리 현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처벌보다는 개헌을 통한 분권이 더 강조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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