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의 산업 재해를 둘러싸고 알 권리와 기밀유출 주장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결정을 내리자, 삼성전자는 해당 자료가 자사의 제조 노하우에 대한 영업기밀(機密)을 포함하고 있다며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지난 2일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알 권리와 영업비밀 사이의 논란은 2014년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조립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됐다. 사망 근로자의 유족이 2016년 고용부를 상대로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공개 불가를 결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보고서에 기재된 근로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는 발암물질 등이 사용되는 사업장의 유해인자를 측정한 결과를 기재한 것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는 보고서를 6개월마다 고용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노동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산재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인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법원 판결 이후 고용부가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일반인이나 언론에도 보고서 공개를 허용하고, 재판부 판결이 온양 공장에 한정된 것인데도 보고서 공개 범위를 삼성전자의 다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으로까지 확대한 지침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는 반도체 생산 라인의 공정 구조와 개별장치 배치도, 생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반도체 생산 라인의 경쟁력은 장비설치와 관련된 엔지니어링 노하우에 의해 결정된다. 해당 보고서가 제3자에게 공개될 경우 삼성이 지난 30년간 쌓아 온 지적재산이 통제되지 않고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온양공장은 생산된 반도체를 재가공하고 포장하는 후(後)공정 공장이지만, 화성과 평택 공장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공장이므로 보고서 공개의 범위 확대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보고서를 공개해야 할 공장의 범위는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을 통해 추후에도 확대할 수 있지만 영업비밀은 한번 공개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60%를 소비하고 있지만, 반도체 자급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2025년까지 18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배경이다. 특히, 올해는 D램과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보고서가 안전장치 없이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가 수십 년간 축적한 지적재산이 중국 등 후발 업체에 누출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정부는 법원 판결대로 삼성전자 노동자 가족에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지적 재산이 해외로 누출돼 피해를 보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피해자와 무관한 제3자나 언론 등에 보고서를 공개하면 지적재산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커진다. 정보공개 이전에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노동자 유가족과 기업 모두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