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극장 창작 무용극 ‘궁:장녹수전’ 만든 정혜진·오경택
- 히트 제조기 안무가 鄭
“美·싱가포르서 온 관객들 환호
2∼3분 엑기스 춤 표현 힘들어
녹수와 대신 북춤이 대표장면”
- 첫 무용극 연출 吳
“대사없는 춤과 드라마의 연결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게 부담
젊은층도 편하게 봐주시기를”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여인이 기생에게 술 한잔 얻어먹으려 안달 난 선비들의 잔을 한 손으로 탁 쳐낸다. 돌연 삽살개 탈을 쓴 정체불명의 사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예를 갖춰 술을 따른다. 삽살개 탈을 벗으니 있는 것은 연산이다. 왕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얼굴에 띤 미소를 거두지 않더니 이윽고 자신의 손으로 연산의 곤룡포를 벗긴다. 벗긴 옷을 스스로 몸에 걸치더니 춤을 추며 연산의 눈을 바라본다.’
노비로 태어나 기녀를 거쳐, 후궁의 반열에까지 오른 장녹수(?~1506).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 번 시집을 가고 자식까지 둔 여인이 왕에게 발탁됐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만 보면 오산이다. 정동극장(극장장 손상원)이 창작 초연으로 선보이는 무용극 ‘궁 : 장녹수전’은 그보다는 어린 나이, 빼어난 외모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했지만 기예 하나로 궐에 입성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으로 읽힌다. 이번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정혜진 안무가와 오경택 연출가도 한목소리로 “희대의 요부이기에 앞서 당당한 예인(藝人)이었던 녹수를 그리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녹수를 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며 삶을 의탁하는 기생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의도다.
지난 6일 정동극장에서 만난 정 안무가는 “어제가 개막 첫날이었는데 미국, 싱가포르 등에서 온 관객들도 머리 위로 박수를 치는 것을 보고 한숨 돌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 안무가는 서울예술단에서 2012~2015년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며 ‘신과 함께’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등 히트 레퍼토리를 만든 주인공이다. 작품 ‘뿌리 깊은 나무’ 때 연출로 참여했던 오 연출가를 이번 작품에도 추천했다. 정 안무가가 “한국 무용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작품 속에 녹여 넣고 싶은 춤이 많아 여러 개를 벌려놓으면 가장 힘든 정리는 오 연출가 몫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무용극 연출은 처음이라는 오 연출가는 “대사가 없는 무용극 특성상 춤과 드라마를 연결해 설득력 있게 그려내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75분 동안 펼쳐지는 무용극에서 장녹수는 장고춤과 가인전목단, 선유락 등 화려한 한국 전통춤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정 안무가는 “10∼20분짜리 한국무용 중 2∼3분짜리 알짜만 뽑아서 넣느라 힘이 들었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한량무 등 군무까지 하면 총 15개의 춤이 작품에 등장한다. 녹수가 연산에 항의하는 조정의 대신들과 대립하는 것을 표현한 북춤은 작품의 대표 장면으로, 삼고무에서 팔고무까지 변주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제안대군 아래서 배운 기예를 활용해 연산을 치마폭에 휘둘렀던 장녹수는 결국 반정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정동극장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토대로 창작해 무대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제작진 모두 여성 캐릭터를 기존과 다르게 조명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장녹수전에 대한 안팎의 기대도 크다. 왕비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의 명성황후를 그린 작품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참여했던 정 안무가는 “전작을 통해 관객들이 여성의 아름답고 가녀린 외면보다는 그 이면의 악행,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사실적으로 한 인간을 그려내는 데 더 깊이 공감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사회적 통념과 편견에 맞선 여성을 다룬 뮤지컬 ‘레드북’을 마친 오 연출가도 국내 공연계에 드문 여성 중심 서사로 주목받았다. 오 연출가는 끝으로 “장녹수전이 오후 4시 상설공연인 만큼 시니어층과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측면이 크지만, 우리 전통춤이 빚어내는 드라마에 관심 있는 젊은 사람들도 편하게 와서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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